[여름수양회-2] 죽었다 다시 살아난 내 아들

baby-small1[여름수양회 말씀-2] 죽었다 다시 살아난 내 아들

말씀 누가복음 15:11-32 요절 누가복음 15: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시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아무리 자식이 부모 마음을 헤아려 보려해도 그 나아가 되어 보지 않으면 절대로 헤아릴 수 없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어머니의 마음도 깊고 크지만 아버지의 마음 또한 표현되지는 않으나 그 깊이와 넓이는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을 아버지라 불리기를 좋아하신 것 같습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로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심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는 사랑이 풍성한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품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아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버지를 떠나 탕자로 살았던 아들을 아버지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아들로 영접해 주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크신 사랑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회복되어 아버지의 품 안에 안기기를 기도합니다.

1. 아버지를 떠나간 아들

11,12 절을 보십시오. 아들 둘을 가지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이 아버지는 말 잘 듣는 모범생 아들과 천둥 벌거숭이 같은 둘째를 가진 분이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둘째가 폭탄 선언을 하였습니다.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이게 다른 말로 하면 “이제 아버지는 조만간 죽은 나이이니, 내 유산이나 빨리 주세요”라는 참으로 배은망덕한 요구였습니다. 둘째는 이제 아버지와의 인연의 끈을 끊고, 죽은 사람으로 여기며 오직 자신만을 위한 인생을 살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이 때 아버지는 어떻게 했습니까? “아니 네가 사람이냐! 당장 호적 팔 테니 집에서 나가!!”, 이렇게 소리쳤습니까? 아닙니다. 12절 하반절을 보십시오.”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아들의 요구를 들어주었습니다. 이는 아들의 마음을 아버지가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이미 떠나기로 결심한 아들의 마음을 돌이킬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는 가슴이 염려와 걱정이 가득하였습니다. 아직도 어리고 철부지 같은 둘째를 생각하면 밤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마음이 아프지만 이 요구를 들어주었습니다. 아들이 다만 모든 것을 내어준 아버지를 기억해 주기를 원했습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받은 둘째 아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13절, 모든 재산을 들고 먼 나라로 가서 정욕을 좆아 살았습니다. 육신의 원하는 대로 살았습니다. 짐승처럼 아무런 제어 없이 하루 하루 마음에 내키는 대로 하였습니다. 부유한 재벌처럼 돈을 펑펑 쓰고, 창기를 집으로 불러들였습니다. 가끔은 유명한 채팅 사이트에 들어가서 원나잇을 즐겼습니다. 세상은 넓고 여자는 많다가 그의 신조가 되었습니다.

친구들은 그를 변기00에 버금가는 변기탕자라고 불렀습니다. 둘째는 술취하고 방탕하게 돈이면 다 되는 먼 나라에서 세상의 왕이 된 것 같은 육신의 쾌락에 도취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일에도 끝이 있듯이, 그의 모든 재산이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그 때 업친데 덥친 격으로 흉년이 들어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어려운 상황이 도래하였습니다. 그는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돼지 똥 치우는 돼지치기가 되었습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 집에서 귀한 존재였으나, 먼 나라에서 모든 것을 잃어버렸을 때 그는 더럽고 볼품없는 돼지치기가 되었습니다. 그는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도 먹지 못하는 돼지 보다도 못한 존재, 짐승보다도 낮은 등급의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가 이렇게 비참하게 된 원인이 무엇입니까? 돈이 다 떨어져서 입니까? 아니면 흉년이 들어서 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그가 아버지 집을 떠났다는데 있습니다. 여기서 둘 째 아들은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의 실존을 보여줍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 원하는 대로 자기의 본성대로 살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것이 최고의 인생, 가장 행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처음 기대와는 너무나 다릅니다.

13절을 보면 “거기서 허랑 방탕하여 그 재물을 낭비하더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결국 낭비하는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유는 방탕한 자유가 되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시간과 물질, 정열을 낭비하게 됩니다.

낭비란 말은 말 그대로 쓸 데 없는 것에 귀한 것들을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 아버지가 주신 것들이 있습니다. 시간, 젊은, 돈, 능력.., 그러나 그것을 나의 유산으로 만들어, 나를 위해, 나의 육신의 소욕을 위해 쓸 때 그것은 결국 사라져버리고, 짐승과 같은 삶을 살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아무리 고상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로 인해 얻은 것이 결국 쓸모 없는 것이 되어 낭비합니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이렇게 살 때 인생에 참된 의미와 가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지 않고 자기 영광만을 위해 사는 삶, 그 삶이 아무리 세상적으로 훌륭하고 성실해 보여도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낭비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왕이요, 많은 재물과 탁월한 지혜를 갖고 있었던 솔로몬 왕은 권면했습니다.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하나님을 떠날 때, 인생을 정말 써야 할 곳에 쓰지 않을 때 그 인생에는 반드시 궁핍이 찾아옵니다.

한국은 풍요로운 나라입니다. 세계 GDP 순위는 전세계 11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스페인, 러시아, 호주와 같은 나라보다 더 높습니다. 민주주의가 가장 안정적으로 정착된 개발 도상국중의 하나로 모범적인 국가로 인정받습니다, 미국도 못하는 여자 대통령을 배출한 나라입니다. 학습 의욕이 가장 높고 대학 진학율은 82%로 세계최고 수준입니다. 돈도 있고 지성도 겸비한 가장 혁신적인 국가로 인정받습니다. 이런 나라에 사는 우리들은 행복해야 합니다. 행복하십니까? 청년들은 우리나라를 대한민국이라 부르지 않고 헬조선이라 부릅니다. 국민 소득 3만불이 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될것처럼 말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민주주의가 실현되면 행복할 거라던 386세대는 이제 명퇴에 괴로워합니다. 대학만 들어오면 행복할 거라던 대학생들은 학점과 취업준비로 다시 고통스런 경쟁을 합니다.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해도 먹고 사는 것은 더욱 빡빡해지고 하루 하루 버겁습니다. 돈을 벌고 인생에 성공을 할지라도 그 영혼에 참된 안식과 평화, 기쁨이 없습니다. 이 채워지지 않는 내면을 채우고자 많은 사람들이 술과 정욕의 노예가 되고, 돈의 노예가 되고, 사람의 노예가 됩니다.

사회적으로도 끔찍한 범죄가 우리 주변에 너무나 쉽게 발생하고, 하루에도 몇 명 씩 자살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연예인부터 시작해서 많은 유명 인사들과, 심지어 초일류 기업 총수까지 창기와 놀아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사는 게 다 그런 거야, 저런 사람들도 그런데 뭐.” 합리화하며 죄에 무감각한 인생을 삽니다. 우리의 근본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떠난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돼지보다 못한 비참한 상황에 놓여 있던 둘 째 아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17절을 보십시오.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둘 째 아들은 절망적인 상황에 이르자 아버지 집이 기억났습니다. 그는 살고 싶었습니다. 풍요롭고 사랑이 넘치던 아버지 집이 뼈에 사무치게 그리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께로 돌아가고자 결단하였습니다. 20절 상반 절을 보십시오.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2. 아들을 다시 찾은 아버지

20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 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둘째는 아버지께로 돌아갔습니다.(증권가 찌라시가 SNS를 통해 퍼졌습니다. “둘째아들 그는 짐승인가 철면피인가” 사람들이 손가락질 했습니다. 탕자가 돌아왔다, 망나니 아들이 돌아왔다, 호적에서 파버린 아들이 돌아왔다. 저 꼴 좀 봐라, 두 손가락질하고, 혀를 차며 조롱하였습니다.

그러나 20b를 보십시오.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버지는 저 멀리 웬 거지 하나가 터벅터벅 걸어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단번에 그가 둘째 아들임을 알아보았습니다. 지치고 상하고 초췌한 모습, 너무나 초라한 모습이었지만 그는 둘째 아들이 분명했습니다. 아버지는 백발을 휘날리며 달려가 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아버지는 상처 나고 더럽고 몰골이 흉한 아들을 그대로 안았습니다. “둘째야, 내가 너를 얼마나 기다렸는데, 너를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네가 이렇게 살아 돌아왔구나” 따뜻한 아버지의 음성에 둘째는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아들은 부끄러워서 아들이라 불리는 것을 감당하지 못했지만 아버지는 아들에게 가장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웠습니다.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큰 잔치를 열어 선포합니다. 24절을 보십시오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아버지는 탕자가 왔을 때 죽었던 아들이 살아 돌아왔다고 기뻐했습니다. 여기서 아버지는 하나님 아버지를 가리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아버지가 보여주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한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당신을 떠난 인생들을 잃어버린 소중한 아들로 보고 계십니다. 아버지는 돌아온 둘째를 “불효 자식, 탕자, 허랑 방탕이”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 이 내 아들은”이라며 그가 변함없이 자신의 아들임을 선포하였습니다. 이 아버지에게 중한 것은 재산도, 명예도, 체면이 아니었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아들 자체였습니다. 먼 나라에서 들리는 소식 속에 그가 듣고 싶은 것은 둘째의 소식이었습니다. 큰 기근 속에 사망자가 속출 한다는 소식에 그는 둘째의 이름이 혹시나 나오는 것이 아닌가 가슴 졸였습니다. 둘째 아들과 비슷한 모습의 청년을 볼 때마다 다시 한번 돌아보았습니다. 그의 마음속에서 둘째는 언제나 생생히 살아있었습니다. 아버지의 마음과 눈에 떠나지 않는 것은 둘째 아들이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매정히 버리고 떠나 갔으나 아버지는 그를 놓지 않고 항시 그리워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하나님을 잃어버린 우리를 둘째 아들처럼 여기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악된 더러운 삶이나, 실패한 인생이나, 하나님을 거역한 죄인들로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에게로 돌아가기만 하면 그분은 우리를 그분의 자녀로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는 그분의 자녀들을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품어주시며 아들로서 목을 안고 영접하여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가장 귀하고 소중한 존재들로 눈동자와 같이 보호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허물이 허다할 지라도, 죄악으로 냄새가 천지에 진동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되사 우리의 모든 허물을 덮으시고 가장 좋은 것으로 축복하십니다. 만일 자신의 재물을 가지고 가 모두 허비하고 거지꼴로 돌아온 사람이 아들이 아니라도 아버지가 용서하고 기뻐했을까요? 아마 불가능할 것입니다. 세상과 사단은 우리를 고소합니다. “너는 자격이 없는 자이다, 너 같은게 무슨 하나님의 자녀냐?. 하나님도 너 같은 아들이 있으면 정말 부끄러워 할 거야, 에라 나가 죽어라” 하지만 자기 아들이라면, 자기 자식이라면 어떠한 잘못도 모두 용서가 됩니다. 그것이 바로 아버지와 자녀들의 관계입니다. 이와 같이 하늘 아버지 안에서 우리는 그의 사랑 받는 아들로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존재들입니다. 그 끈을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절대로 놓지 않으시고 단단히 붙잡고 계십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말합니다. 사49:15-16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어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다른 사람들이 볼 때 참 볼품없고 죄악되 보여도 자신이 볼 때 참으로 쓸모 없고 부족할 지라도, 아버지에게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귀하고 사랑스런 존재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잃어버린 자들이 돌아올 때 기뻐하십니다. 그 기쁨은 마치 죽은 자식이 다시 살아 온 것과 같은 기쁨입니다. 24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둘째가 오물로 범벅이 되고, 돼지간에서 죽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더럽고 추하게 거지로서 길거리에서 비명횡사 했다면 그 아버지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세월호에서 아들을 잃은 아버지는 이렇게 인터뷰 했습니다. <최덕하군 아버지의 내용 중에> 한참 동안 말 없이 창 밖만 쳐다보던 그는 “성탄절을 앞두고 큰 선물을 받았어요”라며 다시 말을 이었다. 4월 16일 사고 이후 단 한번도 꿈에 나타나지 않던 덕하를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 만난 것이다. “덕하가 6살 때 모습으로 왔어요. 품에 팍 안기더라고요. 꿈인데도 얼마나 반갑던지…” 최씨는 그 동안 한번도 자신을 만나러 와주지 않던 아들에게 투정을 섞어 “아빠 안보고 싶었어? 왜 이제 왔어”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 말에 덕하가 ‘아빠가 울 것 같아 못 왔어’라고 하는데….” 최씨는 그 동안 웃음 뒤에 틀어쥐고 있던 눈물을 끝내 쏟고 말았다.

이 아버지에게 죽은 아들이 다시 살아 온다면 그 마음이 어떠하겠습니까? 아들의 따뜻한 손을 만져 볼 수 있다면, 아들의 해맑게 웃는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아빠” 하면서 집에서 달려 나와 그 품에 안기는 아들의 따스함을 다시 한번 느낄수 있다면…

그 아버지는 무슨 일이든지 하려 할 것입니다. 아버지는 그의 생명을 내어주면서까지 라도 그 아들을 살려내려 할 것입니다. 그 모든 재산을 다 던져서라도 그 아들을 살려 내고 싶을 것입니다.

죽은 아들이 살아서 돌아오는데 그의 행색과 그의 과거가 문제가 될까요? 아들이 공부를 잘했던지 못했든지, 부모님의 말을 잘 들었던지 안 들었든지, 부족한 모습과 허물들, 죄악들이 하나라도 문제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오직 살아 그 부모의 품 안에 돌아온다면, 다시 한번 그들의 볼을 부비고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그 자체로 아버지는 기쁨에 겨워 뛰놀 것입니다.

24절.“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이 아버지의 마음이 곧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죽었다 살아난 자식을 만나듯이 기뻐하십니다. 지금 모든 것을 잃고 돌아온 때에도 변함없이 사랑해 주었습니다. 그 아들이 약하고 추하고 더러운 죄인의 모습이어도 변함없이 사랑하십니다. 있는 그대로 영접해 주십니다. 죽었다 살아난 아들인데, 그 아들이 다시 살아났는데 무엇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하나님 아버지께서 용서하지 못하고, 감당 못할 죄가 무엇입니까?

살인자입니까? 간음하는 사람입니까? 도둑질하고 거짓말하는 사람입니까? 악독한 사람입니까? 탐욕에 물든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잃어버린 자식을 꿈 속에서라도 한번 보고 싶어하던 아버지의 마음과 같이, 주님은 우리가 그 품 안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원하고 계십니다. 그 품 안에 돌아와 살아온 기쁨을 함께 누리길 원하십니다. 어느 것도 이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으로 돌아가 가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이 은혜 안에 용서받지 못할 죄악은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우리가 잃어버린 아들임을 깨닫고 주님께로 돌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그 때 우리는 다시 아들로 회복이 됩니다. 다 팔아먹고, 다 탕진하고, 다 쪼그라 들었을 지라도 바로 돌아가야합니다. 죽음의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살리실 아버지께로 돌아가면 아버지께서 그 뜨거운 보혈의 사랑과 은혜로 우리를 감싸 주실 것입니다. 그 사랑의 노래, 기쁨의 노래가 온 천지에 맑은 종소리와 같이 울리며 기쁨의 잔치를 열어 주실 것입니다.

*제 아버지는 둘째 아들 같은 분이셨습니다. 할아버지가 힘들여 모아 놓은 재산을 지금의 제 나이 때에 많이 말아 드셨습니다. 선산의 반도 팔아 먹고, 논도 팔아먹고, 친구 보증서 줬다가 집문서도 은행에 담보로 잡히기도 했습니다. 술과 노는 걸 좋아 하셔서 집안에서는 어머니와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아버지 집은 빨리 떠나고 싶은 곳이었습니다. 성경의 둘째 아들은 너무 사랑과 관심을 받아서 떠나고 싶은 것 같았지만, 저는 집이 너무도 상처를 받고 싸우기만 해서 벗어나고 싶은 곳이었습니다.

허랑방탕하게 살다 재수시절 폐기종으로 2번이나 병원에 입원하여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저는 죽음이 주는 두려움과 자신의 한계 앞에 절망하였습니다. 저의 인생은 끈 떨어진 연과 같이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인생이었습니다. 의지할 곳이 없고, 이끌어 줄 사람도 없는, 의미없는 인생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구원의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어찌하여 내가 너를 잊겠는냐,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하리라” 하시며 저의 외롭고 아픈 마음을 위로하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저의 의지할 곳 없는 마음에 진정한 아버지, 하늘 아버지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올해 폴란드에서 또 1년여 만에 들어오면서 마음에 깊은 실패감이 들었습니다. 잘 나가는 듯했던 회사 생활은 곤두박질치고 다른 사람들 보기도 창피하여습니다. 먼 이국에가서 이도 저도 아닌 실패한 인생처럼 보였습니다. 선교사로서, 회사원으로서 별 볼일 없게 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어디로 갈지 몰라서 울고 있는 아이와 같은 심정이 되었습니다. 뒤돌아 보니 가진 것도 없고, 이룬 것도 없고, 그렇다고 잘나가는 인생도 아니고 텅비고 공허한 인생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이 저를 있는 그대로 품어주시는 아버지가 되심을 알게 하셨습니다. 세상을 나그네처럼 돌아다니며, 지친 마음, 실패한 모습, 잘난 것 없는 모습 속에 마음이 낙심된 저를, 아무 말없이 그 사랑의 품 안에 안아주시는 아버지를 새롭게 만나게 되었습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스3:17) 하나님은 저의 존재 자체로 기뻐하시는 분이셨습니다. 하나님은 다른 무엇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제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그 것으로 인해 기뻐하시고 사랑해 주시고 계셨습니다. 세상에 지치고 힘들 때에, 자신의 죄악과 부족함으로 인해 부끄러울 때, 차마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가 없었지만 하나님은 저를 기다리고 계셨으며, 그 앞에 나아갈 때마다 품에 안으시고 사랑과 힘을 주시는 분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많은 것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채워주셨습니다. 옛날 아버지의 집을 안좋은 기억을 잊어버릴 아름다운 가정을 주셨습니다. 사랑스럽고 위로가 되는 두 아들을 주심으로 얼굴에 웃음을 되찾게 해주셨습니다. 무엇보다 하늘나라 아버지 집에 대한 소망이 날마다 새롭고 강하게 저의 심령에 역사하게 해주셨습니다. 저는 하늘 아버지집에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거할 것을 생각하면 정말 기쁨이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천사도 흠모하는 사명인의 삶을 살도록 불러주신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영혼들을 섬길수 있고, 말씀을 증걸 할수 있는 특권과 은혜를 주심으로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일하는 동역의 기쁨을 누리게 하십니다.

저는 이번 달도 적자라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야 하나 고민하고, 세상에서는 내세울 것이 없는자입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하나님 아버지가 계십니다. 이 하나님 안에서 저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로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사랑을 받는 고귀한 자입니다. 비록 세상에서는 흙수저일지는 몰라도, 이 아버지 안에서 저는 진정 축복을 받은 자요, 세상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하늘나라 금수저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우리의 하늘 아버지가 되시며, 우리가 돌아오기를 학수고대 하십니다. 자기 태에서 태어난 자식과 같이 우리의 존재자체를 기뻐하시며,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고자 애타게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죄 없다 하시고, 의롭다 하시며 거룩한 의의 옷을 입혀주실 분이십니다. 우리가 이 아버지에게 돌아가 온전한 회복과 사랑을 누리는 기쁨의 삶으로 돌아가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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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houghts on “[여름수양회-2] 죽었다 다시 살아난 내 아들

  1. 누가 조누가 조

    수양회를 토요이날 참석하여 본 메세지를 듣지 못 해서 많이 섭섭했는데 이렇게 보게 되어 감사하네요
    차여호수아 목자님의 진심과 기도가 담겨 있는 말씀과 간증에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조건없이 영접해 주시는 하나님의 한 없는 사랑과 은혜를 찬양합니다. 제가 이 주님의 사랑을 의지하여 있는 모습 그대로 날마다 나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여호수아 목자님이 이 은혜 안에서 더욱 강건해지고 직장에서도 승리 히시기를 기도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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