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수양회-3] 깊은 데로 가라

PROW SMALL[여름수양회 말씀-3] 깊은 데로 가라

말씀/누가복음 5:1~11 요절/누가복음 5: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오늘 말씀은 아름다운 갈릴리 해변 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곳에서 고기잡이로 지쳐있는 시몬을 깊은 데로 초정하고 계십니다.

깊은 데는 어떤 곳입니까? 왜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를 깊은 데로 인도하셨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초정하시는 깊은 데는 어떤 곳인지,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갈릴리 여러 회당에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시며 전도역사를 이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많은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예수님 계신 곳이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주변으로 모여들었습니다. 1절 말씀을 보십시오. “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이날도 예수님께서는 아침에 게네사렛 호숫가로 나가셨습니다. 아침은 분주한 시간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여지없이 아침부터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위해 호수 주변으로 모여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어찌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지 예수님은 모여드는 사람들로 인해서 해변으로 밀려나실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새벽부터 호숫가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는 시몬에게 부탁하셨습니다. “시몬 사람들이 너무 많으니 이 배를 육지에서 조금 떼어 줄 수 있습니까?”

시몬은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이 예수님의 요청을 묵묵히 들어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시몬이 띄어준 그 배를 강대상 삼아 해변에 모여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율법적인 가르침과는 너무 달랐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습니다. 자유함과 회복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한 말씀이라도 노칠까 싶어 숨을 죽이고 듣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청명한 말씀이 게네사렛 호숫가에 모여 있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은혜롭게 퍼져 나갔습니다.

예수님의 은혜로운 말씀이 어느덧 모두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많은 무리들은 아쉬움에 예수님께 더 많은 말씀을 듣고 싶어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마치신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을 뒤로 한 채 한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다가가셨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밤새도록 그물을 내렸지만 텅 빈 배를 옆에 두고 다시 그물을 손질하고 있는 시몬 이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을 때도 그물에서 손을 떼지 못하고 있는 시몬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갈릴리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는 어부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보다는 고기잡는 것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또한 밤이 새도록 그물을 내리며 고기를 잡을 만큼 성실한 사람 있었습니다. 빈 그물을 올리고 있는 자신의 현재의 모습에 낙심이 되었지만 그 빈 그물을 다시 손질하며 내일을 준비할 줄 아는 삶에 대한 의지가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시몬에게 예수님은 관심을 가지고 다가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시몬이 지난밤에 아무것도 잡지 못한 것을 잘 아셨습니다. 그래서 그가 현재 그물 던질 의욕도 없음을 잘 아셨습니다. 이런 시몬에게 예수님은 먼저 다가가셨습니다.

시몬도 자기에게로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시몬은 예수님께서 말씀을 마치시고 배를 띄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러 오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시몬에게 다가가신 예수님은 너무도 의외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다함께 4절 말씀을 보십시오.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이 너무도 예상치 못한 말씀에 시몬은 몹시 당황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아침이라 그물을 내릴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내렸던 그물을 걷어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간에, 그것도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니,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잖아도 빈 그물로 마음이 상해 있는 시몬으로서는 황당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게다가 시몬은 갈릴리 호수의 베테랑 어부였습니다. 그리고 해변에는 아직 많은 사람들 모여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고기잡이와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다시 고기를 잡으러 나간다는 것은 자존심이 매우 상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백번 양보해서 다시 예수님 말씀대로 고기를 잡으러 나간다 하더라도 또 다시 빈 그물을 끌어 올리게 되면 그때의 그 민망함과 망신을 그는 감당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몬은 목수이신 예수님이 뭘 모르시고 하는 말씀 아닌가? 아니면 내가 뭘 잘 못들은 건가? 라며 자기의 귀를 의심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시몬,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세요”

그러면 예수님께서 왜 이 상황에서 시몬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예수님은 시몬을 도우시므로 그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자 하셨습니다. 어부로서 빈 그물을 끌어 올린 시몬에게 지금 가장 절실한 것은 배에 가득히 고기를 잡아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어부들의 소망이요, 가장 큰 기쁨입니다. 그러나 시몬은 지금 실패하고 의욕이 꺽여 있었습니다. 손질하던 그물을 마저 정리하고 얼른 집에 가서 쉬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이런 시몬에게 예수님께서는 먼저 말씀에 순종해 봄으로써 예수님을 직접 체험해 보도록 도우셨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그가 예수님을 새롭게 만나고 예수님의 말씀 안에 있는 더 깊은 세계에 관심을 갖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거칠고 무뚝뚝하기 그지없는 어부 시몬이 장차 예수님의 제자로까지 성장해 갈 소망을 두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소원가운데 시몬에게 먼저 다가가셔서 그가 깊은 데로 가도록 도우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가라”고 하셨던 깊은 데는 어떤 곳입니까? 수심이 가장 깊은 곳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그 곳은 나의 생각과 경험이 닿는 그 너머에 있는 세계입니다. 내가 알고 있고 경험해서 익숙한 세계가 아니라 나의 눈에는 보이지 않고 숨겨졌던 세계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이성과 지식으로만 가기에는 두렵고 꺼려지는 곳입니다.

그곳은 바로 예수님의 말씀의 세계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의 생각과 경험을 뛰어 넘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익숙한 세계가 아닙니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고 숨겨졌던 세계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이성과 지식으로만 가기에는 두렵고 꺼려지는 세계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의 세계에는 우리의 이성과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놀라움과 경이로움이 가득한 세계입니다. 율법에 메여있던 사람이 자유를 얻는 세계요, 죄로 인해 고통하는 사람이 죄사함의 은혜를 누리는 세계입니다. 세상에서는 버려진 인생이 이 말씀 안에서는 의미있는 존재로 변화되는 세계입니다. 이것은 말씀의 세계가 세상의 율법과 권세가 지배하는 세계가 아니라 영존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가 다스리시는 진리의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은 말씀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이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말씀이 곧 예수님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더 알아갑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 왜 이 땅에 오셨는가? 그리고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체험해 가게 됩니다. 또한 이 예수님을 더 깊이 알아갈수록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를 알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알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창조물인 나 자신을 한층 더 깊이 이해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어떤 존재인지, 왜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셨는지? 그리고 내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정신없이 육신의 소욕을 쫓아 살던 삶이 이 말씀의 세계에서 자기 인생의 의미를 생각해 보고 깨닫게 되는 곳입니다. 그래서 무의미 하게 생각되던 삶에 의미가 부여되는 곳입니다.

이와 같이 깊은 데는 말씀의 세계요, 말씀이신 예수님을 깊이 체험해 가는 세계입니다. 그리고 그 체험을 통해서 나의 존재가 새로워지고 삶이 변화되는 곳입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을 통해서 말씀을 깊이 체험한 시몬의 삶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그는 갈릴리 호수의 평범한 어부였습니다. 어부들이 보통 그렇지만 거칠고 무뚝뚝합니다. 성격도 직선적이고 좌충우돌하는 형이었습니다. 또한 변방 갈릴리 출신이라 인맥도 없었고 학벌이나 학식은 더더욱 없었습니다. 그저 각박해진 현실을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인생이었습니다. 이런 자신의 삶을 볼 때 시몬 자신도 자신의 삶에 큰 소망이나 의미를 두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저 고기 잡은 숫자에 하루하루의 희비가 엇갈리는 인생이었습니다. 이런 인생에서 오는 무의미와 허무를 그는 해가 거듭될수록 더 많이 느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오늘 같이 빈 그물로 하루를 망치는 날에는 그런 감정들이 더 많이 올라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그의 삶이 깊은 데서 예수님의 말씀을 체험하고 어떻게 변화되었습니까? 그는 더 이상 학문이 없는 평범한 범인이 아니었습니다. 한 번의 설교로 삼천명을 회개케 하는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성전 앞에서 구걸하고있는 앉은뱅이를 말씀으로 일으켜 세우는 능력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고난 받는 초대 교회 성도들을 위해 베드로 전. 후서를 기록할 만큼 뛰어난 말씀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를 반석위에 세우는 리더요, 오늘날까지도 전 인류에게 신앙의 영향력을 끼치는 영원한 영적 스승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시몬이 자신을 깊은 데로 인도하신 이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시몬은 갈릴리 호수에서 물고기 잡는 어부로 이름도 없이 사라졌을 것입니다. 물론 그는 성실하고 열정이 있었으므로 열심히 살아서 갈릴리 어부계의 고수가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산 생활인의 삶은 하나님 앞에 설 때에 별 의미가 없습니다. 더구나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죄 가운데 부끄럽게 인생을 살다가 결국은 죽어 영원한 지옥 불에 떨어져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이런 갈릴리 호수의 어부 시몬을 찾아오시고 그를 깊은 말씀의 세계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시몬에게 임한 말할 수 없는 은혜요, 축복 이였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이 말씀에 시몬은 이제 어떻게 반응하였습니까?

5절 말씀을 보십시오.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시몬은 예수님의 이 분명한 말씀에서 왠지 거부할 수 없는 말씀의 권위가 느껴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침부터 모여들어 예수님의 말씀을 이렇게 열심히 듣는데, 이런 분이 아무 근거 없이 자신에게 이런 말씀을 하실 분이 아님을 본능적으로 느꼈습니다. 그래서 시몬은 예수님의 이 납득하기 힘든 말씀으로 역시나 입이 산만큼 나와 있는 동료들을 설득하였습니다. 그리고 밤이 새도록 빈 그물만을 올리게 한 그 바다로 다시 나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이번에는 호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다시 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끝까지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그물을 구석구석 잘 내리고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그물을 조심스럽게 끌어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지난 새벽과는 달리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팔뚝의 힘줄을 통해서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물을 이제 거의 절반정도 끌어 올리고 있을 때 잡힌 고기들이 너무 많아 그물이 찢어지려 하는 있는 것이었습니다. 한 번에 이렇게 많은 고기들이 잡힌 것을 보는 것은 어부생활 몇 십 년 만에 처음 보는 광경이었습니다. 시몬은 자기 배에 있는 사람만으로는 이 고기들을 다 끌어올릴 수 없음을 직감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을 다급하게 손짓하여 불렀습니다.

어~ 야보고, 요한! 여기 얼른 와 보드라고~! 물고기가 하도 많아서 그물이 찢어 진당케~!!

그리고 황급하게 도착한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의 도움으로 그물을 모두 끌어 올렸습니다. 그 잡힌 고기는 두 배에 가득 찼습니다. 그래서 그 배들도 잠길 지경이었습니다. 마치 갈릴리 호숫가에 있는 모든 물고기들을 다 잡아 올린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이 엄청난 광경에 자기와 함께 고기잡이를 한 모든 사람이 놀라고 놀랐습니다.

이 어찌된 일인가? 이 대낮에, 그것도 깊은데서 이렇게 많은 물고기들이 잡히다니, 자기들의 눈으로 직접보고 경험했어도 도저히 믿기 힘든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이 예수님의 말씀의 권능 앞에서 시몬은 너무도 놀랍고 기뻤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그는 허겁지겁 육지로 올라와 예수님의 무릎 아래 엎드렸습니다. 그의 심경에 큰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는 머리를 조아리며 흐느꼈습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그가 예수님께 무슨 잘못이라도 했습니까? 시몬은 창조주가 되시는 예수님을 보게 된 것입니다. 조금 전까지 예수님은 훌륭한 선생님이었습니다. 자신은 성실한 어부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의 본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만물을 다스리시는 주님이셨습니다. 자신은 이 분을 몰라 봤습니다. 주님 없이 세상을 한탄하며 살았던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그 앞을 스쳐지나갔습니다. 나를 떠나라는 고백은 난 자격이 없는 죄인이라는 말입니다. 누구든지 이 예수님 앞에서는 죄인임을 깨닫습니다. 시몬은 고기를 잡지 못한 것보다 더한 절망감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구원의 빛이 임했습니다.

10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예수님께서는 먼저 “무서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는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든지 이제는 그의 존재 전부를 받아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시몬에게는 죄사함과 구원의 음성입니다. 그의 마음엔 죄사함으로 말미암는 잔잔한 기쁨이 찾아왔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예수님은 말씀을 깊이 체험한 그의 삶에 앞으로 큰 변화가 있음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면 사람을 취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람을 취한다는 것은 시몬 자신처럼 자신만을 위해 열심히 살지만 궁극적으로는 죄와 죽음의 바다에 빠져 결국은 심판받을 수밖에 없는 인생들을 말씀으로 살리고 섬기는 삶입니다.

예수님의 주위에는 언제나 이 세상에서 좌절하고 절망하고 실패하고 그래서 두려움에 떠는 인생들로 가득했습니다. 어디에 인생의 진정한 소망을 두어야할지 모른 체 자기 자신만을 위해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이 사람들의 결국은 무엇입니까? 허무와 절망과 그리고 죽음입니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하는지 자신의 경험과 지식으로는 도저히 해결책을 찾을 수 없는 인생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인생들을 깊이 이해하고 섬기며, 새로운 삶으로 인도하는 일에 어부 시몬을 초정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시몬이 고기잡은 숫자에 울고 웃는 인생이 되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보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더 깊이 체험해가는 인생이 되길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안에서 예수님을 더 깊이 알아가고 사람을 섬기는 귀한 인생이 되길 원하셨습니다. 이것이 앞으로 그의 삶에 임할 큰 변화였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체험한 시몬과 그 동료들은 기쁨으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앞으로 자기들이 가야할 길이 보인 것입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인생의 목적과 의미를 예수님 안에서 발견한 것입니다.

갈릴리 호수의 어부 시몬을 예수님의 말씀을 체험해 나가는 삶으로 인도해 주신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려드립니다. 주님께서 저희 삶도 동일하게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체험하는 삶으로 인도해 가심을 감사하고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저는 본문을 묵상하면서 소감을 3개의 파트로 나누어 정리해 보았습니다. 먼저는 예수님께서 부족한 죄인을 깊은 데로 초청해 주신 말씀이 무엇인가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죄인이 어떻게 삶에서 체험해 갔는가 입니다. 마지막으로는 현재 상황에서 제가 가야할 깊은 데는 어디인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1. 깊은 데로 초청해 주신 말씀

예수님께서 죄인을 깊은 데로 초청해 주신말씀은 무엇이었습니까? 그 말씀은 바로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으로 저도 시몬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시몬이 갈릴리 호수에서 빈 그물을 끌어 올리고 있던 것처럼 저도 대학입시에서 계속해서 빈 그물을 끌어 올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입시에서의 실패로 4수 끝에 당시 전문대학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실패감에 깊이 주눅들은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학교얘기만 나오면 늘 얼굴이 벌개지 곤 하였습니다. 목자님과 말씀을 공부하면서 이 실패감을 믿음으로 극복해야 함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편입시험에 다시 도전하고자 하였습니다. 기도하며 편입시험 준비를 열심히 했습니다. 예비군 훈련을 마치고 온 날조차도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예비군 복을 입은 그대로 학원수업을 듣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목자님들의 간절한 기도지원을 받으며 편입시험을 봤습니다. 시험을 잘 본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합격자 발표날이 되어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학교로 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 일입니까? 합격자 명단에 제 이름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습니다. 기도하며 준비한 시험인데 또 떨어진 것이었습니다. 떨어질 때 느끼는 그 기분은 정말 익숙해지지가 않았습니다. 저는 터벅터벅 정문쪽을 향하여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도 합격자 명단이 있었습니다. 저는 다시한번 합격자 명단을 보았습니다. 역시 합격자명단에는 제 이름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막 돌아서려는데 명단 하단에 작은 글씨로 추가합격자 명단이 있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첫 번째 본 게시판에서는 급한 마음에 눈에 안 띄었었는데 이번에는 눈에 보였던 것입니다. 그곳을 가만히 보니 제 이름이 그곳에 조그맣게 적혀 있었습니다. 이게 왠 일입니까? 붙은 것도 아니고 완전히 떨어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님, 만약 저를 합격케 해 주신다면 제가 많이 부족하지만 캠퍼스 목자로 살겠습니다. 저는 이 기도를 주님께 간절한 심정으로 드렸습니다.

주님은 이 다급하고 엉성한 기도를 그래도 긍휼히 여겨주셔서 최종 합격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온전히 주님의 은혜로 캠퍼스 생활을 다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말씀의 힘으로 실패감을 극복하고 정말 오랜만에 합격의 큰 기쁨을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이것으로 저는 시몬처럼 말씀의 깊은 은혜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다 떨어진 줄 알았던 시험에서의 합격, 이것은 저에게는 단지 시험에서 합격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가 말씀의 체험을 통해서 깊은 세계가 있음을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계기로 저는 말씀을 더 깊이 신뢰하고 예수님께 더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이 말씀의 체험으로 저는 말씀의 깊은 세계요, 영적인 깊은 세계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이 말씀의 체험은 지금도 제 영혼의 닻과 같이 저를 붙들어 주고 있습니다. 힘든 일로 회의적인 생각이 들 때도 편입시험에서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는 말씀에 순종해서 승리를 경험한 이 믿음의 체험을 기억할 때 이것이 제게는 큰 힘과 위로가 되어 주고 있습니다.

2. 말씀의 실제적인 체험

이 말씀으로 큰 은혜를 체험한 저는 학교를 졸업하고 입문한 영업의 세계에서도 역시나 이 말씀을 늘 체험하고 있습니다. 생존 경쟁과 치열함이 있는 영업의 세계는 마치 약육강식의 정글과 같습니다. 힘이 있고 능력 있는 사람이 독식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압축판이 이 영업의 세계입니다. 그만큼 녹녹치 않고 스트레스가 심하고 실적에 대한 강한 압박이 늘 상존하는 곳입니다. 저와 같이 속 두려움이 많고 낮을 잘 가리는 사람이 이곳에서 어떻게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지 저 자신도 궁금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 비결은 바로 말씀의 깊은 세계에서 얻는 영적인 힘에 있습니다. 입사초기 저는 어디를 가야 할지 몰라 몹시 두려워하며 방황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 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는 말씀이 너무도 큰 힘과 방향이 되어주었습니다. 이 쉽지 않은 말씀에 몸부림을 치며 순종하고자 했을 때 예수님은 제 힘으로는 도저히 해 낼 수 없는 성과를 내도록 도와 주셨습니다.

2009년에 삼성그룹의 계열사들이 강남역으로 막 이동하여 왔습니다. 저는 이 삼성그룹의 삼성물산에 먼저 도전하였습니다. 마침 이전직장에서 삼성그룹 교육팀에 대한 기초정보가 있었습니다. 이것을 기초로 작은 소기업의 영업사원인 제가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 삼성과의 거래에 도전장을 낸 것이었습니다. 도전장은 냈지만 특별하게 어떻게 해야 할지 뾰족한 방법은 없었습니다. 보안이 철저해서 막무가내로 들어가 볼 수도 없었습니다. 다시 두려움이 엄습해 왔습니다.

큰소리는 첫는데 망신을 크게 당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붙들고 간절히 기도할 때 마음에 믿음이 생기고 도전할 힘이 생겼습니다. 6개월간 끈질기게 포기하지 않고 교육담당자에게 안부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근처를 지날 때면 꼭 연락을 드리려 관계를 쌓으며 첫 방문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때 미팅을 할 기회가 왔습니다. 마침 손이 많이 가지만 시간이 별로 없는 교재 작업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기존 거래처에는 다른 물량이 많아서 맡기기에는 미안했던지 제일 만만해 보이는 제게 한번 들어오라는 전화가 왔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이틀 안에 모두 해 줄 수 있느냐는 제안을 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주님이 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밤새도록 작업을 해줘야하는 동료들에게는 너무 미안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가지고 이일은 반드시 해야 한다고 동료들을 설득 하였습니다. 그리고 같이 밤늦게까지 일을 도와주며 이 작업을 완벽에 가깝게 해 주었습니다. 교재를 받아본 담당자가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계기로 드디어 당시 삼성물산, 삼성중공업, 삼성생명의 교육교재작업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으로 회사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회사의 분위기도 한껏 올라갔습니다. 삼성과 거래한다는 프리미엄으로 다른 기업들과의 거래에서도 탄력과 자신감이 붙었습니다. 업계에도 소문이 쫙 퍼졌습니다. 매장이 교재 작업으로 가득하였습니다. 시몬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두 배에 잠길 만큼 고기를 잡은 것처럼 저도 이때 이런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 깊이 감사했습니다. 때로는 실패도 많이 하지만 삶의 현장에서 주님이 말씀을 통해서 주시는 은혜를 때마다 느끼고 체험합니다. 주님이 제 삶의 현장에서 말씀을 통해서 저와 함께 하고 계심을 매순간 느낍니다. 이런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있을 때 제가 제 직업을 대하는 자세도 많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집니다. 그들에게 제 직업을 통해서도 진정으로 도움이 되어드리고자 많이 노력합니다.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고객들을 섬기고 그 분들의 업무와 회사에도 유익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니 자연적으로 고객들과도 좋은 관계성을 이어나갈 확률이 커집니다. 물론 고약한 고객들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고객들은 정성을 다할 때 그것을 알아봅니다. 이것은 제 인간적인 성실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제 삶의 현장에서 저와 함께 하시고 저를 통해서 일하신다는 것을 깊이 믿을 때 매순간 그렇게 할 의미와 힘이 생기게 됩니다.

3. 현재적으로 가야할 깊은 곳은?

그러면 현재 제가 가야할 깊은 곳은 어디입니까? 예수님은 제가 어떤 부분에서 더 깊어지기를 원하고 계십니까?

저는 영업을 하는 사람이고 성과로 얘기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인지 일 중심적이고 성과 중심적입니다. 이러다보니 본인의 의도와는 달리 성과를 내야하는 조직에서 관계성에 문제가 있음을 보게 됩니다. 저는 영업현장에서 입사초기부터 말씀을 붙잡고 절박한 마음으로 일해왔습니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후배들도 그렇게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야 성과가 나고 그 성과는 어떠한 모양으로든지 다시 그들에게 돌아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마인드로 후배들을 바라보고 판단하고 푸쉬했습니다. 성과를 잘 못 낼 때 답답하고 질책하고 싶은 마음이 앞섰습니다. 열심히 하지 않는 것 같이 보이는 사람에게는 눈에서 레이저가 나갔습니다. 그리고 푸쉬하는 만큼 저도 열심히 뛰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후배들이 이런 저를 모두 부담스러워했습니다. 이기적이고 자기일 중심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순식간에 저는 왕따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이면 후배들이 알아서 따라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저를 인정해 주고 존중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정말 자기중심적인 큰 착각이었습니다.

저는 사람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습니다. 각 사람의 형편을 잘 살피고 각 사람의 입장에서 다가지 못했습니다. 그보다는 일방적으로 자기경험과 자기가 성공해 왔던 세계의 방식만을 고집하고 또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벽이 생겼습니다. 오해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이것으로 인해 감정의 교류가 잘 되질 않았습니다. 성과를 내야 하는 조직이기 때문에 이 문제가 쉽지 만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제가 자기중심적이고 자기 경험에 기초한 생각에서 이제는 더 깊은 세계로 나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을 섬기고 이해하는 부분에서 더 깊은 데로 가라고 하십니다. 겸손하게 섬기는 자리로 가라고 하십니다. 비록 철저하게 이해관계로 맺어진 조직이지만 그 안에서도 사람을 섬기는 내면을 더 배우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선배로서, 상사로서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후배들의 입장에서서 그분들을 더 깊이 이해하는 자리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제가 조금 손해 볼 각오를 하고 그분들 입장을 먼저 고려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있는 그 자리에서 사람을 실제적으로 섬기는 내면을 더 배워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재적으로 제가 가야할 깊은 곳입니다. 제가 자기중심적이고 일중심적이고 손해보지 않으려는 내면을 이제는 내려놔야 하겠습니다. 그대신 사람을 깊이 이해하고 섬기는 더 깊은 세계로 나아가길 기도합니다. 그래서 자기만족과 자기영광을 구하는 삶이 아니라 주님을 더 깊이 배우고 주님의 이름을 높여드리고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에서 더 깊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우리들을 깊은 데로 초청해 주시길 원하십니다. 그 깊은 데는 말씀을 체험해가는 세계요, 그 말씀으로 사람을 섬기는 세계입니다. 연약하고 죄악 되서 자기경험과 자기세계에 갇혀 허망하고 무의미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우리들을 진정한 생명이 있는 깊은 세계로 초정해 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예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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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houghts on “[여름수양회-3] 깊은 데로 가라

  1. 누가 조누가 조

    수양회에서 들을 때와 달리 조용히 말씀을 읽어보니 더욱 은혜가 되네요 느혜미야 목자님이 파곤한 직장생활과 무더운 날씨에 얼마나 투쟁했는가 마음에 다가 옵니다

    목자님 수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은혜로운 말씀으로 섬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말씀이 힘이 되어 직장 후배들도 잘 이끌어 가시기를 기도 합니다

    저도 더욱 겸손하게 학원을 운영하고 한 영혼에 깊이 관심을 갖는 주님의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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