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여름수양회-2] 에덴 동산을 주신 하나님

에덴 동산을 주신 하나님

 

말씀/창세기 2:4~25

요절/창세기 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우리는 지난 강의를 통해 천지를 창조하시고 이를 기뻐하신 하나님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은 그 중에서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 “it was very good”이란 감탄을 하시며, 만족해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당신의 형상대로 만드신 인간을 기뻐하시고 그가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의 청지기로서 살아가기를 원하셨습니다. 이번 창세기 2장 말씀에서는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에덴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마음이 어떠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Part1. 에덴 동산을 만드신 하나님

8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하나님께서 에덴을 만드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기쁨을 주기 원하셨습니다.

에덴은  “기쁨”이란 뜻입니다.  그 이름에 걸맞게 에덴은 모든 것이 잘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그곳은 가난 문제, 물질 문제가 없는 풍요로운 곳이었습니다. 아담이 원하기만 하면 각종 나무의 열매를 돈 없이, 대가 없이 먹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아름다운 곳이기도 했습니다.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지천에 널려 있었습니다. 게다가, 4개의 큰 강이 에덴을 발원지로 하여 흘러나와 모든 식물과 동물들이 마시기에 충분했을 뿐 아니라, 인간의 문명을 탄생시키는 큰 역할도 했습니다. 그곳에는 순금, 베델리엄이라는 진주, 호마노와 같은 보석들도 즐비했습니다. 무엇보다 그곳에는 생명 나무가 있었습니다. 현재, 우리 인생의 한계는 무엇입니까? 죽음입니다.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저 슬퍼할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람을 두시기로 한 그 에덴에는 죽음이 없었습니다. 동산 가운데에 생명 나무를 두셔서 아담이 언제든 먹을 수 있기 때문에 그에게는 항상 생명력이 충만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창설하신 에덴은 그 이름의 뜻대로 기쁨 충만한 곳임에 틀림없었습니다. 어느 하나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인간에게 사명을 주기 원하셨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인간을 위해 완벽한 곳을 예비하신 하나님은 아담으로 하여금 그곳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셨습니다. 이는 그에게 그곳을 잘 관리하도록 “사명”을 주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적절한 일이 있을 때, 성취감과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저는 결혼 전, 허리와 목의 디스크 증상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쉴 때가 있었습니다. 주 6일동안 장막과 인천의 회사를 오가는 것이 너무 힘들었는데, 쉬기 시작하니 비록 몸은 아팠지만 마음은 홀가분했습니다. 그런데 그 홀가분함도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따분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니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아마, 아담도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 없었다면, 그 완벽한 곳에서도 금세 지겨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알맞는 사명을 주시므로 그곳을 관리하고 지키게 하시고 또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들에게 이름을 주는 일까지 담당케 하시므로 에덴의 청지기로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인생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할 때, 만족과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은 인간에게 행복한 가정을 주기 원하셨습니다.

18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베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에덴 동산에는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채워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들이 보시기에 좋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가운데 좋지 않게 생각하신 딱 한가지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혼자 사는 것”입니다. 오래된 영화이긴 하지만, “캐스트 어웨이”란 영화를 보신 분이 계실 것입니다.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로, 페덱스란 택배회사의 회사원이 비행기 조난으로 무인도에 4년이란 세월을 홀로 살아가다가 기적적으로 구조되는 내용의 영화로, 제가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그가 배구공을 친구삼아 살아가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대화할 사람이 없는 그 고독한 순간에 배구공에 난 자신의 손바닥 모양의 핏자국에 눈, 코, 입을 그려, 사람 얼굴처럼 만들고, 그에게 “윌슨”이라는 이름을 주며 친구처럼 지냈습니다. 이처럼 사람은 홀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누군가와 대화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부모님이 계시고 형제 자매가 있고 친구, 동료, 심지어 말 한마디 못해본 사이지만 옆집 아저씨, 아줌마란 존재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담 주위에는 무엇이 있었습니까? 아름다운 나무, 생명 나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강, 모든 가축, 새, 들짐승뿐 이었습니다. 그와 교감을 나눌만한 인격적인 대상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이러한 모습이 보시기에 좋지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이에 그의 갈빗대를 취하여 여자를 만드시고 그에게 이끄셨습니다. 아담은 말합니다.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아담은 여자에 대한 최고의 찬사와 사랑의 고백을 했습니다. 아담에게 있어 한가지 부족했던 것이 채워지는 순간입니다. 하나님은 이 여자를 통해, 아담에게 돕는 베필로서 서로간에 온전히 연합하는 하나의 가정이 되도록 축복하셨습니다. 이 가정 안에 고독과 외로움, 허전함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하나된 가정에는 사랑의 교제가 있습니다. 행복이 넘쳐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아담의 한가지 부족한 것까지도 이해하시고 그의 행복과 기쁨을 위해 하나된 가정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저는 본문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께서 저의 가정에 생명을 주셔서 출산을 준비했던 과정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동역자는 아기의 피부에 트러블이 생기지 않도록 일반 기저귀가 아니라 땅콩 기저귀를 사야한다며 동대문 시장에 나가 여기저기 돌아다녔습니다. 아이가 잘 자도록 잠자리를 꾸미기도 했고 아기의 즐거움을 위해 움직이고 음악 소리가 나는 모빌을 달아 놓기도 했습니다. 또 동역자는 아기에게 좋은 면역력을 키워주고, 엄마의 좋은 영양분을 주기 위해 손목과 몸에 무리가 가면서도, 오랫동안 모유를 주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우리 인생들도 한 생명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하나하나 세심하게 관심을 기울이고 환경을 예비합니다. 그것은 우리를 통해 탄생할 생명,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행복과 기쁨의 동산을 만드신 하나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을 너무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셔서 그에게 꼭 맞는 행복과 기쁨을 주기 원하셨습니다. 이러한 사랑은 단지 에덴동산에만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아담이 범죄한 후, 죄가 들어온 이 세상에서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독생자를 아낌없이 내어주셨습니다. 로마서 5장 8절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자신의 모든 것을 주고서라도 우리 인생을 사랑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Part2. 계명을 주신 하나님

16, 17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지금까지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만들어 놓으신 기쁨의 동산이 얼마나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는 곳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17절 말씀에 나오는 내용은 지금까지 인간에게 행복과 기쁨을 주신 하나님께서 그의 자유를 제한하고 구속하시는 것처럼 느껴지게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인간이 선악과를 먹을 줄 알면서도,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두셨기 때문에, 인간이 범죄하게 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인간이 먹지 말도록 한 것일까요? 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주신 데에는 어떤 뜻이 있는 것일까요?

 

첫째, 하나님은 인간이 에덴을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기 원하셨습니다.

에덴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만들어 놓으신 곳입니다. 그곳의 주인은 누구일까요? 동산을 관리하고, 지키는 사람일까요? 아니면, 그곳을 만드신 하나님일까요? 에덴의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자칫 인간에게 주인되신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없을 때 우리는 쉽게 교만해지게 됩니다. 내가 쓸고 닦고 정성을 들였기 때문에 모두 내 것인 것 같고 남주기 아까운 생각이 들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지 말도록 말씀하심으로써 그곳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 아담에게 기억하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아담은 선악과를 볼 때마다 이러한 제한을 두신 하나님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또한 이로 말미암아 자신과 하나님의 관계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자신과 에덴, 세상을 만드시고 인간 위에 계셔서 만유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의 계명을 따르므로, 영생을 누리기 원하셨습니다.

본문은 우리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신명기 말씀을 보면,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광야생활을 끝마치고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때 주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신명기 30장 19절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그들은 하나님만을 섬기겠다고 아멘으로 화답하였지만 그들은 이방 우상을 숭배하여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바로 창세기 2장 본문의 말씀에도 동일한 맥락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따를 때, 생명과 영생을 주시겠다는 것이고, 그렇지 못할 때, “반드시 죽으리라”는 죽음과 저주의 길을 말씀 하셨습니다.

창세기 2장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이 창세기 1장과 다른 표현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 그 이름은 “스스로 있는 자”란 뜻도 있지만, “언약을 주신 분”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계명과 언약을 주셨고 아담도 그 말씀에 따르겠다고 동의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강요하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든지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의지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패망하도록, 자유 분방하게 살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선택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또한 그렇게 했을 때 영생의 삶을 에덴동산의 생명 나무를 통하여 약속하신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는 창세기 3장에서 선악과를 먹게 되므로, 인간에게 일어난 변화들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고 “선악을 아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인간이 선악을 아는 존재가 되는 것을 왜 원치 않으신 것일까요? 그것은 선악을 판단하는 영역이 사람의 영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역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선악을 판단하고 구분하기 위해서 자신의 생각대로가 아닌,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판단과 결정대로 순종하기 원하셨습니다. 아담이 범죄한 이후로 우리는 여호와께 묻지 않아도 나름대로의 선악을 판단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보편적인 선악을 판단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서로 다른 입장 차에서 오는 선악의 구분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법이란 것을 만들었습니다. 또 국가간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나라간 상위의 법을 만들어서 판단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선악을 판단하기는 불가능하여 서로간 다툼과 싸움만 계속될 뿐입니다. 진정한 선악을 판단하는 일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우리는 나름대로의 판단이 아닌 하나님께 묻고 그분의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하는 삶을 살 때,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에덴을 만드신 하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하신 인생들을 사랑하셔서 그들이 누리기에 가장 베스트로 동산을 꾸미셨고, 행복에 필요한 물질, 환경, 사명과 가정까지도 허락해 주셨습니다. 또한 계명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하며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을 살 때,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단순히 우리를 옭아매는 제한이 아니라 그 속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게 되고 하나님의 계명을 준행할 때의 축복을 알게 하는 도구가 됨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아담의 범죄로 하나님의 축복인 에덴을 잃어버린 현재의 우리는 어떻게 이러한 기쁨의 동산을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요? 성경은 이러한 기쁨의 동산, 에덴을 회복하게 될 날이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에는 천국을 묘사하면서 생명수의 강과 생명 나무가 그곳에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즉, 우리는 천국에서 생명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서 에덴 동산에서와 같이 하나님과 늘 함께하며 영원한 기쁨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러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요한복음 17장 3절은 말씀합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또 요한복음 3장 36절은 말씀합니다.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우리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 때 잃어버린 기쁨의 동산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다시 사랑의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죄사함을 받은 우리는 다시 하나님 나라에서 그분께서 주시는 생명 나무 열매를 먹으며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할 수 있는 특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담의 범죄 후에 잃어버린 기쁨의 동산을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계명을 통해 다시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 드립니다. 저희가 이 사랑을 기억하고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순종하며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채우시는 축복을 현재적으로 체험하는 자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저는 말씀을 준비하며 우리의 행복과 기쁨에 관심을 기울이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과거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의 제자의 삶을 소망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세상에서 즐기는 삶을 버리지를 못했습니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어울리며 술마시고 여기 저기 놀러다니는 삶에 익숙해 있었습니다. 저는 어느 순간, 예수님을 배우며 살아가야 할지 아니면 예수님을 떠나 세상 속에서 살아가야 할지 이렇게 어중간하게 살아가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제가 계속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을 살기 원하신다면, 그 뜻을 보여 주시도록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저에게 말씀으로 임재하여 주셨습니다. 로마서 13장 12-14절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저는 이 말씀을 듣는 순간,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속에서 그와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제게 하나님께서 권면의 말씀을 주시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세상을 선택하고자 했다면, 그 말씀은 저의 자유를 제한하고 억누르고자 하는 것처럼 답답하게 느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세상의 것들을 누리고자 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예수님과 같이 성화되고 싶은 거룩한 영적 소원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 편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저의 선택을 축복하셨습니다. 얼굴의 점으로 인해 자존감이 낮았던 저를 심히 기쁘게 받으시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의 낮은 자존감을 키워가셨습니다. 서울과 대전을 오가는 힘든 삶 속에서도 부활의 믿음과 소망을 제게 허락해 주셨습니다. 또 하나님은 저에게 딱 알맞은 돕는 베필을 허락해 주셔서 저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그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체험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실 수 있는 사랑의 하나님을 저는 두 자녀를 통해, 조금이나마 배워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해 계명을 주신 것이 아니라 계명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또 그 계명을 지켜 나갈 때 축복을 알게 하시는 하나님이 되십니다. 저희가 이 사랑의 하나님을 새롭게 묵상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에게 기쁨과 행복의 에덴을 주기 원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이 시간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한마디 : 에덴을 주기 원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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