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마태복음 제 29 강
말씀 / 마태복음 19:23-20:16
요절 / 마태복음 20:16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 19장 23-30절은 부자 청년이 근심하며 떠난 후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주고받은 내용이다. 20장 1-16절은 포도원 품꾼의 비유로서 19장 30절에 대한 설명이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이 일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예수님은 이에 대한 풍성한 보상을 약속하셨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의 마음에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다는 자기 의로움이 있었다. 주와 복음을 위해 헌신했기 때문에 그에 따른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공로주의가 있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부름 받은 사람의 합당한 자세가 아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통해서 복음의 일꾼이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1. 예수님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고 하십니까(23,24)? 그 말씀에 제자들은 왜 몹시 놀랐을까요(25)?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26)?
V2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24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25 제자들이 듣고 몹시 놀라 이르되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26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V23,24.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말씀하셨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불가능한 일을 강조하려고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비유를 과장법으로 사용하신다.
– 재물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힘이 있다. 돈만 있으면 세상에서 무엇이나 할 수 있을 것처럼 생각된다. 그래서 재물이 많아질수록 재물을 사랑하고 의지하게 된다. 결국에는 하나님보다도 재물을 더욱 사랑하게 된다. 이것이 타락한 인간의 본성이다. 그래서 잠언 기자는 이렇게 기도했다.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이다.” (잠언 30장 8,9절 ) 재물에 소망을 둔 사람은 결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가난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성경에는 아간이나 가룟 유다나 데마처럼 재물을 사랑해서 죄를 짓고 주님을 배반한 사람들도 있지만, 아리마대 요셉이나 바나바처럼 재물을 가지고 주님을 섬긴 사람들도 있다. 재물에 대해서 소망을 두지 않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게 되면, 재물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롭게 된다. 자신이 가진 재물을 가지고 선한 일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물을 많이 소유할수록 재물을 사랑하고 의지하는 마음이 생겨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V25,26. 당시 유대인들은 부자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이요 가난한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으로 생각했다. 큰 부자일수록 하나님의 축복을 더욱 많이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씀하셨다. 이는 부가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을 막는 장애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이에 놀란 제자들은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반문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어느 경우든지 구원은 사람이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가능하게 하시는 것이다. 구원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일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돈에 대한 애착 때문에 부자는 구원 받기가 어렵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부자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돈에 대한 애착으로부터 자유롭게 해 주신다. 그래서 자신이 소유한 재물을 가지고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데 사용한다. 이로 인해서 부자도 구원을 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 이를 볼 때 구원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구원은 인간의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자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고 영생을 소유했다고 해서 자랑할 수가 없다.
2.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베드로는 무엇을 기대하고 있습니까(27)? 예수님은 이런 그에게 어떤 보상을 약속하셨습니까(28,29)? 그러나 무엇을 경계하십니까(30)?
V27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29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30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V27. 부자 청년은 재물에 대한 애착 때문에 근심하면서 떠나갔다. 이런 부자 청년과는 다르게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그래서 베드로는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다”고 말했다. 이 말의 초점은 예수님을 따르면서 자신이 버리고 희생한 것에 있었다. 이것은 그가 구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런 자부심과 공로의식이 잘못된 신앙을 갖게 하고 교회를 병들게 한다. 이에 예수님은 먼저 주와 복음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린 자에게 어떤 보상이 주어지는가? 말씀해주신다.
V28,29. 예수님은 주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한 사람은 재림할 때에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심판한다’는 것은 오랜 기간 다스림을 의미한다. 주님과 함께 영원토록 왕 노릇한다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주님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여러 배를 받고 영생을 상속받는다고 하셨다. 마가복음에는 100나 받는다고 했다(막10:30). 100배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자에게 주시는 최대한의 보상이다. 이를 볼 때 우리의 전 인생과 소유한 모든 것을 주와 복음을 위해서 투자하는 것이 가장 큰 이익을 얻는 방법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주와 복음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투자한다.
V30.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들떠 있던 제자들에게 경고의 말씀도 하신다.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다.” 직역하면 “그러나 많은 첫째들이 꼴찌들이 되고 꼴찌들이 첫째들이 될 것이다.”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것은 위대한 일이다. 그러나 이 일로 인해서 특권의식과 공로의식을 갖는 것은 제자로서 합당한 자세가 아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예수님의 제자로서 마땅한 도리이다. 이런 행위 자체가 영생을 얻을만한 공로가 되지 못한다. 여전히 영생은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다. 더군다나 예수님의 부름을 받아서 제자가 되었다는 것은 은혜에 속하는 일이다. 죄 가운데서 살던 자가 구원을 받고 주님을 배우고 따르는 인생을 살게 된 것 자체가 영광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주와 복음을 위해서 모든 사도보다도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했다(고전15:10).
– 우리는 주와 복음을 위해서 일생을 헌신했더라도 자랑할 수가 없다. 무익한 종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런데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에게는 자랑하는 마음이 있었다.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은 먼저 된 자라서 나중 되게 된다. 또한 이런 자랑하는 마음, 의로운 마음을 가지고는 끝까지 예수님을 따를 수 없다. 그래서 예수님은 20장 1-16절에서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통해서 헛된 자부심을 내려놓게 하신다.
3. 천국은 마치 누구와 같습니까(1)? 주인은 품꾼들에게 하루 얼마씩의 품삯을 약속했습니까(2)? 여기서 포도원, 주인, 품꾼은 각각 무엇을 비유합니까?
V1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2 그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V1. 원문은 ‘왜냐하면’으로 시작한다. 한 나라의 특성은 그 나라를 통치하는 사람에 의해서 결정된다. 천국은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이 그대로 반영되는 곳이다. 본문에 나타난 집 주인은 하나님의 모습을 대변해준다. 그래서 천국은 포도원을 소유하고 있는 집 주인과 같다고 하였다. 집 주인의 행동과 태도 속에 천국의 특성이 들어있다는 말씀이다.
– 보통 주인들은 일할 일꾼들을 불러 모은다. 그리고 모인 사람들의 이력서를 보고 시험을 치고 면접을 보아서 좋은 일꾼을 뽑는다. 그러나 본문에 나타난 포도원 주인은 큰 부자였지만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서 포도원에서 일할 일꾼들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장터에서 일 자리가 없어서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을 초청했다. 비유에서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을, 품꾼은 복음의 일꾼을, 포도원은 하나님께서 복음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사명의 땅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구약 시대부터 지금까지 하나님 나라의 일꾼들을 찾아다니셨다. 노아 홍수 심판 이후에 또다시 사람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불신 가운데 살아가고 있을 때,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한 사람을 찾으셨다. 비록 75세나 되었지만 충성된 마음을 가진 아브라함을 발견하시고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삼으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종살이를 했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고된 일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들의 장래는 희망이 없었다. 하나님은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셨다. 그들을 통해서 온 세상을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원대한 계획을 가지신 것이다. 물론 이런 계획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실하지 못함으로 인해서 실패했다. 결국 하나님은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시고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할 찾으러 다니셨다. 갈릴리 바닷가를 거니시다가 열심히 그물을 던지고 있던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르셨고, 바닷가에서 그물을 깁고 있는 야고보와 요한도 부르셨다. 능력은 있지만 잘못된 길로 들어서서 괴로워하던 마태에게도 불러주셨고, 무지한 열심 때문에 신자들을 박해하던 바울도 천국 복음의 일꾼으로 불러주셨다. 이렇게 하나님은 찾아다니시면서 복음의 일꾼들을 찾으시고 부르신다.
V2. “그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당시 하루 노동 시간은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이다. 오전 6시부터 오후 6까지 일을 하고 품삯으로 한 데나리온을 받았다. 포도원 주인은 품꾼들에게서 한 데나리온을 주겠다고 약속하고 포도원에 들여보냈다.
4. 주인은 왜 계속해서 장터에 나갔을까요(3-7)? 주인은 장터에서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했습니까? 제십일시에도 장터에서 놀고 있는 사람들을 포도원에 들여보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V3 또 제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4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그들이 가고 5 제육시와 제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6 제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7 이르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V3,4. 주인은 계속해서 장터에 나갔다. 오전 9시에 나가보니 장터에 놀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노동자들은 장터에 모여 자기들을 고용해 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포도원 주인은 할 일이 없이 놀고 서있는 사람들을 불러서 포도원에서 일하도록 했다. 그리고 품삯으로 ‘상당하게 주리라.’라고 약속했다. 이 말을 들은 품꾼들은 하루 품삯을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신 자신들이 일한 시간만큼만 주어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포도원으로 들어갔다.
– 더 이상 그들은 할 일 없이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도 되었다. 주인의 아름다운 포도원에서 열심히 일만 하면 되었다. 포도원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것 자체로도 은혜인데, 거기에다 삯도 주신다니 은혜 위에 은혜이다.
V5. 주인은 정오와 오후 3시에도 장터에 나가 일꾼을 불러서 포도원에서 일하도록 했다. 하나님의 포도원에는 일거리가 많기 때문에 많은 일꾼들이 필요하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은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일꾼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고 말씀하셨다(마9:37,38). 그러나 주인이 일꾼을 찾는 진정한 이유는 할 일 없이 놀고 있는 자들에게 한 일을 주기 위한 것이다. 정오와 오후 3시까지도 부름 받지 못한 일꾼들은 고용된 사람들에 비해서 능력이 떨어지거나 게을러서 늦게 나온 사람들일 것이다. 보통 주인들이라면 이런 사람들을 일꾼으로 부르지 않는다. 그러나 포도원 주인은 그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생각했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는 그들이 공치는 날이면 처와 자식들이 굶주리게 된다. 이런 안타까운 사정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놀고 있는 사람들을 고용했다.
– 하나님은 부족한 사람일지라도 일하기를 원하면 하나님의 포도원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평범하고 세상에서 주목받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세상에서 버림받고 무시 받던 사람들도 많다. 라합은 여리고성에 살던 기생이었고, 에훗은 오른손에 장애가 있었지만 사사가 되었다. 삼갈은 농부였지만 소를 몰던 막대기로 600명의 블레셋 용사들을 무찔렀다. 고린도전서 2장 26-30절은 말씀한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처럼 하나님은 부족한 자라도 하나님의 포도원에서 일하도록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시다.
– 요즘은 일자리가 없어서 청소부를 뽑는데도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까지 응시를 한다고 한다. 사람이 할 일이 없어서 빈둥거리는 것처럼 비참한 일은 없다. 할 일이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다. 그것도 먹고 살기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구원하는 사명인의 삶을 산다는 것은 큰 은혜요, 축복이다. 부름 받은 일꾼들에게는 일찍 부름 받았는가? 늦게 부름 받았는가? 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충성하는가? 충성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V6,7. 예수님 당시에는 실업 문제가 심각했다. 포도원 주인은 오후 5시에도 장터에 나갔다. 그곳에는 아직도 서성이며 종일토록 놀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을 품꾼으로 쓰는 사람이 없어서 하루 종일 놀고 있었다. 게으르거나 병약하여 쓸모가 없어서 고용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고용하게 되면 일하는 분위기를 해치고 손해를 끼치게 된다. 이제 1시간 후면 하루 일과가 끝난다. 더 이상 일할 수 있는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도 장터에 서 있었던 것은 현실은 절망적이지만 차마 집으로 돌릴 수 없었던 것이다. 포도원 주인은 이런 그들의 모습을 안타깝게 여기고 포도원에 들어가서 일하라고 했다. 지금 들어가면 겨우 한 시간 정도 일할 수 있지만 그래도 하루를 공치는 것보다 훨씬 낫다. 겨우 1시간 정도이지만 그에 대한 품삯만으로도 감지덕지하게 생각했다.
– 이상에서 볼 때 포도원 주인은 돈 버는데 관심이 있기보다 품꾼들의 행복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인은 사람들이 포도원에서 사명을 열심히 감당함으로써 행복한 인생을 살기를 원했다. 한 마디로 주인은 은혜를 베풀기 위해서 사람을 찾으셨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은혜로 복음 역사에 일할 일꾼들을 부르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을 함으로서 행복한 인생을 살기를 원하신다.
5. 저물매 포도원 주인은 품삯을 어떻게 계산했습니까(8,9)? 먼저 온 자들은 왜 주인을 원망했습니까(10-12)? 주인은 왜 잘못한 것이 없다고 말씀합니까(13-15)? 포도원 품꾼의 비유는 천국에 대해서 무엇을 말해줍니까(16)?
V8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9 제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10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11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 12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13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14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15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16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V8,9. 하나님의 포도원에는 누구라도 들어올 수 있도록 넓게 열려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 열려 있는 것은 아니다. 오후 6시가 되면 문이 닫힌다. 그리고 결산을 시작한다. 일이 다 끝나고 일꾼들이 삯을 받는 시간이 되었다. 포도원 주인은 청지기에게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도록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오후 5시에 와서 1시간만 일한 품꾼에서 한 데나리온을 주었다. 한 시간 밖에 일하지 않았기 때문에 1/10데나리온만 주어도 정당하다. 그러나 주인은 자신의 손해를 고려하지 않고 그들의 형편을 고려하여 하루 품삯을 주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받는 삯은 일한 대가라기보다는 은혜이다. 한 데나리온을 받은 품꾼들은 얼마나 기뻐했을까?
V10. 오후 5시에 들어온 사람들이 한 데나리온씩 받는 것을 보고 먼저 온 사람들은 기대에 부풀었다. 오후 3시에 들어온 사람들은 적어도 두 데나리온은 기대를 했다. 정오에 들어온 사람들은 세 데나리온은 받을 수 있겠다고 기대했다. 이른 아침부터 일했던 품꾼들은 열배 이상 일했기 때문에 열 데나리온 정도는 받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런데 청지기는 모든 품꾼들에게 동일하게 한 데나리온씩 주었다.
V11,12. 일찍 온 품꾼들은 크게 실망하고 원망하기 시작했다.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 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처음 포도원에 들어올 때는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들어온 사람들은 한 데나리온을 받기로 약속하고 들어왔다. 그들은 하루 종일 일을 해서 한 데나리온을 받지만 자신들을 고용해서 일하게 해준 주인에게 감사했다. 그 뒤에 들어온 사람들은 불러주는 사람이 없어서 장터에서 놀며 서성이던 사람들이었다. 포도원 주인이 그들에게 “상당하게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들은 중간에 들어왔기 때문에 한 데나리온보다도 적은 임금을 기대했을 것이다. 한 데나리온은 받지 못해도 일한 만큼 받아도 감지덕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신들이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한 데나리온을 받았다. 그들은 후한 품삯을 준 주인에게 감사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감사하기보다는 불평했다. 불평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는 그들이 주인과의 관계성 속에서 계산하지 않고, 오후 5시에 들어온 사람들과 비교하여 자신들의 임금을 계산했기 때문이다.
– 주인과의 관계성 속에서 생각했을 때는 너무나 감사했지만 다른 사람과 비교하니 불행해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자신들이 땀 흘리며 수고했던 일들을 인정해주지 않는 것 같아 섭섭했다. 제일 먼저 들어온 사람들과 가장 늦게 들어온 사람들은 일한 시간과 분량에서 큰 차이가 있다. 그런데도 동일하게 보상해 준 것은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다. 그래서 원망하고 불평한 것이다. 이를 보면 비교의식 때문에 주인이 베풀어준 은혜를 모두 잊어버린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순간부터 불행해지게 된다. 질투가 생기고 손해의식이 들고 섭섭한 마음이 든다.
V13-15. 주인은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했다.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않았느냐” 주인의 보상은 정당하다. 이른 아침에 들어온 자들에게 한 데나리온을 주기로 약속했고, 그 약속을 정확하게 지켰다. 오전 9시와 정오와 오후 3시에 들어온 사람들에게도 상당하게 주리라고 약속했고, 그들이 기대하던 이상으로 보상해주었다. 이처럼 주인은 약속대로 보상했고 더욱 넘치게 대가를 지불해주었다. 그러므로 한 데나리온 받은 것에 대해서 주인에게 감사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 외에는 주인이 자신의 돈을 가지고 어떻게 하든 그들이 상관할 바가 아니다. 상관하는 것은 월권행위이다.
– 주인은 자기의 것을 가지고 마음대로 할 권리가 있다. 그렇지만 주인은 그 권리를 악용하지 않고 은혜를 베푸는데 사용했다. 이처럼 하나님은 주권을 가지고 계시지만 그 주권을 항상 은혜를 베푸시고 선을 행하시는데 사용하신다. 한 번도 주권을 남용하시거나 악용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선한 주권을 영접하고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마다 감사하며 찬양해야한다. 그런데 인간은 자기중심적이라서 하나님 편에서 생각하지 않고 늘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한다. 내가 원하고 바라던 대로 되면 감사하고 기뻐하지만, 내가 바라던 대로 되지 않으면 원망하고 불평한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생각하면 눈물 나도록 감사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받는 은혜와 축복과 비교하면 받은 은혜를 다 잊어버린다.
– 또한 인간의 마음에는 공로주의가 있다. 베드로처럼 일찍 부름 받아서 주님을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한 사람일수록 자기 의가 많다. 주님을 위해서 많은 수고를 했기 때문에 많은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영적인 세계를 잘 알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특성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인간의 행위대로 보응 받는 나라가 아니다. 은혜의 원리에 의해서 다스려지는 나라이다. 은혜의 원리에 따라 보응 받기 때문에 자신이 수고한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은 보상을 받는다.
V16. 품꾼들은 하나님 나라의 원리가 아닌 세상 원리로 생각했기 때문에 원망하고 불평하였다. 하나님 백성이 되었지만 여전히 세상 원리와 가치관을 따라서 살았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에게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라서 나중 된다”고 경고하신다.
– 제자는 이 세상에서 주와 복음을 위해서 남들보다 더 많이 수고하고 희생했다고 해서 자기 의로움이나 공로의식을 가지면 안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 되어 희생하고 헌신하는 삶 자체가 은혜요 축복이기 때문이다. 이런 삶 자체 속에서 천국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일찍부터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주의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또한 쓰임 받지 못하고 빈둥거리면서 인생을 허비하다가 늦게 부름 받아서 주님의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큰 은혜이다. 하나님은 일찍 부름 받은 사람이나 늦게 부름 받은 사람이나 동일하게 한 데나리온을 주신다. 동일하게 영생을 선물로 주시고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토록 살게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교하지 않고 늘 하나님께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이런 하나님 나라의 특징과 원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에는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하나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들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