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여름수양회-5] 너는 복이 될지라

2018년 여름수양회 주제강의 제 2 강   너는 복이 될지라
말씀 : 창세기 11:27-13:18
요절 : 창세기 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특송 : 오직 예수 뿐이네 https://youtu.be/gfNH21Q9tOk
(메세지를 정리하면서 보니 특송곡 대로 설교를 쓴것 같이 흐름이 일치하네요.)
(“크신 계획 다 볼 수도 없고 작은 고난에 지쳐도 주께 묶인 나의 모든 삶 버티고 견디게 하시네”)
우리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배우고 알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가나안으로 갔던 믿음의 결단이 있고 말년에 얻은 이삭을 바치라는 말씀에 지체하지 않고 삼일길을 가서 이삭을 바치던 행함이 있었습니다. 이런 아브라함의 발꿈치도 따라가지 못하는 자신을 볼때면 나와는 태생부터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위인전의 인물을 대하듯 감탄만 하고 끝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은 믿는 모든 사람이 아브라함과 모양만 다를 뿐 같은 길을 걸을 것을 의미합니다. 과연 우리는 그 길을 똑같이 걷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도 복이 되고 있는 것일까요? 이 시간 말씀 가운데 저희를 복이 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가기를 기도합니다.
Part 1. 너는 복이 될지라.
창세기 11장 27절부터 32절까지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와 그 가족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데라는 갈대아 우르에서 우상을 만들어 팔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도록 명하셨습니다. 아브람은 그말에 순종하여 가족에게 말하였고 아버지 데라와 조카 롯이 함께 가나안으로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데라는 유프라데 강 바로 윗쪽인 하란에 멈춰서 머물렀고 아브람도 아버지와 함께 거하였습니다. 아브람이 75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다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12:1~3절을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하나님은 여러가지 표현을 통해 아브람에게 계획하신 뜻이 얼마나 크고 위대하고 탁월한지 보이십니다. ‘큰 민족’이라는 의미는 규모면에서 큰 것도 있지만 다른 민족보다 탁월하고 존귀하다는 의미입니다. ‘이름을 창대케 한다’는 것은 이름이 명예롭게 되고 널리 퍼지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복의 근원이 된다’는 것은 3절의 설명처럼 복의 통로, 복과 관계된 사람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나 한사람을 복으로 만드실 뿐 아니라 나와 관계된 모든 사람이 그 복을 함께 맛보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의 다음 사람도 복을 알게 하시고 나의 옆사람도 복을 맛보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던 사람까지도 뭔지 모르겠지만 세상을 다르게 살아간다는 것을 느끼고 사모하게 됩니다. ‘복이 된다’라는 문장에는 하나님의 의지가 담겨있습니다. ‘복으로 만들겠다. 어떤 경우에도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복으로 만들겠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습니까?
첫째, 하나님의 복은 우리의 생각을 넘어서는 복입니다.
아브람이 생각한 후손은 어느정도 였을까요? 아브람은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자식 한명, 자식 두명, 열두아들, 한 마을, 한 부족 정도까지는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국가와 인종을 초월해서 모든 믿는자의 조상이 된다는 것은 상상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창세기 1장 1절은 선언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하셨습니다. 지금도 계속 팽창하고 있어서 크기를 알 수 없는 우주부터 지극히 작지만 계속해서 분열하고 생존해가는 박테리아까지 모든 것을 창조하셨습니다. 창조부터 지금까지 그 모든것들을 주관하시며 하나도 하나님의 계획 밖에 있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의 생각을 넘어섭니다.
노아의 동물을 다시 생각해 봅시다. 어린 한쌍이 올라타야 하는데 방주까지 직접 와야 합니다. 그 종의 가장 건강하고 유전적으로 문제가 없는 두마리가 갑자기 고향 친척 아비집을 떠나 노아의 방주로 가도록 지시하심들 받아 자신이 원래 살던 곳에서부터 갈바를 알지 못한채로 방주까지 걸어가기 시작합니다. 동물들 각자의 출발하는 시간이 다르고 암수가 서로 다른 지역에서 출발했더라도 모든 동물들이 비오기 바로 전 그 시간에 맞춰서 도착하고 방주에 입장하였습니다. 그 모든것을 톱니바퀴처럼 딱딱 맞도록 하나님이 준비하셨습니다.
여기 계신 목자님중에 ‘나는 당연히 구원 받을만 했다’라고 생각하시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과관계가 없는 우리의 인생에 찾아오셨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우리 인생에 들락날락 하게 하시고 때로는 고통으로 때로는 위로로 역사하게 하셨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그 사람을 그곳에 있게 하셨습니다. 칼같은 사람을 데려다가 나의 문제점을 교정시키셨습니다. 부드러운 사람을 데려다가 나의 상처를 치료하셨습니다. 그분들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나의 인생의 톱니바퀴 속에 하나님은 딱딱 맞아 움직이게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연스럽게 녹여내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한사람을 통해서 계획하신 믿음의 역사의 계획은 모든 법칙을 넘어선 한계가 없는 계획입니다. 자손을 생각할 수 없는 아브라함에게 사라를 통해 이삭을 얻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닌 우리에게는 믿음으로 자손이 되는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큰, 창대한 이라는 단어로 표현해 주셨으나 복의 크기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이 충만합니다. 아브라함 한사람에게 두신 복의 크기, 우리 각 사람에게 두신 복의 크기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크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반드시 복으로 만들고자 하십니다.
앞서 ‘너는 복이 된다’ 라는 문장에는 하나님의 의지가 담겨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의지를 꺾을 수 있는 것이 있을까요? 예수님을 통한 구원역사를 보면 어떤것도 하나님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헤롯을 통해, 시험을 통해, 고난을 통해, 죽음을 통해 막고자 하였으나 세상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십자가와 세상에서 가장 힘이 쎈 죽음을 극복하고 부활을 통해 결국 구원역사를 완성하셨습니다. 이사야서 9장 7-8절은 말합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하나님께서는 계획하신 바대로 역사를 관통하여 예수님을 구세주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신 분이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그의 뜻을 이루어가시는 분이십니다. 모세의 경우 40세에 뜻을 품고 이스라엘을 이끌고자 했을때는 호응하지 않으셨고 80세에 늙어서 능력이 없다라고 생각할 때 부르셨습니다. 아브라함도 아버지 데라가 하란에 머물러 있을때에 재촉하지 않으시고 75세의 나이가 되었고 자식을 볼 수 있다는 소망이 사라져 가고 있을 때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이루어 가십니다. 시간이 지나도 어렵지 않습니다. 장소가 멀어도 어렵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의 실수도 결국 하나님은 선으로 갚으셨고 아브라함의 순종도 하나님은 귀하게 쓰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어떠한 행동을 하던지 복이 되는 방향으로 몰아가셨고 결국 믿음의 조상, 복의 근원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되돌릴 수 있을까요? 우리가 하나님보다 강한 존재가 아니기에 되돌릴 수 없습니다. ‘너는 복이 된다’는 말씀 앞에 우리는 복이 되어버리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물론 지금 우리 가운데 그렇지 못한 부분이 많아서 실망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루를 천년같이 천년을 하루같이 여기시는 하나님께서는 느긋하게 우리를 복으로 만들어가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지금 이해할 수는 없지만 대단하고 반드시 받을 복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이것을 알아가고 이해하게 될까요?
Part 2. 눈을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데 우리가 그것을 복으로 알지 못하면 복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삶은 그 복을 알아가고 체험해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삶 가운데 복을 알아갔는가 본다면 우리도 같은 경험을 통해 그 복을 조금씩 알아갈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떻게 복을 알아갔습니까?
첫째, 자신의 부족함 가운데서 하나님의 복을 배웁니다.
12장 1절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하나님께서 먼저 아브람에게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서 지시한 곳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자신이 의지하던 모든것과 이별하고 온전히 하나님 앞에 서는 곳으로 하나님께서는 먼저 부르십니다. 자신의 부족함이 발가벗듯 드러나는 곳으로 보내십니다. 아브람은 이 말씀에 순종하여 안정된 직장과 도시의 편안한 생활을 버리고 가나안으로 가족과 소유를 모두 이끌고 출발하였습니다.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도착하였을 때 그 땅은 어떤 상황이었습니까? 6절을 보십시요.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아브람은 생계와 안전을 버리고 하나님을 좇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거주하는 가나안 사람들은 환영하기보다 경계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습니다. 9절에 보면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 지역의 텃세에 못이겨서 살 수 있는곳을 찾아서 계속 이사를 한 것 같습니다.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기근까지 들었습니다. 이 기근은 쉽게 극복할 정도가 아닌 큰 기근이었습니다. 나중에 이삭 때에 언급될만큼 큰 기근이었습니다. 결국 아브람은 애굽을 선택하고 옮기게 됩니다.
‘역사에 if라는 것은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브람이 가나안인의 텃세 앞에 ‘죽으면 죽으리라’ 하고 모레 상수리나무 앞을 무단 점거하고 버텼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브람이 기근 앞에서 ‘굶어죽어도 가나안 땅에서 죽으리라’ 하며 버텼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러나, 그 당시의 아브라함에게 백번을 다시 선택하라고 해도 남방과 애굽을 택하였을 것입니다. 그의 수준으로는 그 길이 최선이기 때문입니다. 축구를 보면서 우리는 아쉬워 할 때가 많습니다. 골문 앞에서 한명 제끼고 슛을 넣으면 되는데 그걸 못한다고 한탄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해내는 축구선수는 월드클라스입니다. 아브람이 가나안에 어떻게든 남아있는게 맞지만 이때는 그럴 능력이 되지 않았습니다. 애굽에 도착했을때 아브람은 아내 사래를 누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이를 통해 자신의 목숨을 살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바로가 사래를 궁으로 데려가자 모든것이 틀어졌습니다. 이제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바로의 궁에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바로 앞에 불려가 바로에게 엄청난 추궁을 들은 후 모든 소유를 가진채로 무사히 풀려났습니다.
우리는 여러가지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남방으로 갈때 막지 않으셨는가? 왜 하나님은 이삭처럼 가나안에 거하라고 지시하시지 않으셨는가? 왜 하나님은 애굽의 국경선 앞에서 막지 않으셨는가? 이 상황이 될때까지 하나만 막으셔도 문제가 안생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곳으로, 하나님을 배울 수 있는 곳으로, 복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는 곳으로 아브람을 몰아가셨습니다. 사래가 바로의 궁으로 잡혀갔을때 많은 기도와 고민과 절망을 하였을 것입니다. 바로 앞에 불려가서 ‘어찌하여, 어찌하여, 어찌’라고 책망을 들을 때 바보같고 부족한 자신에 대해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살아서 사래와 함께 바로의 궁을 나올때 가슴을 쓸어내리며 하나님에 대해서 배웠을 것입니다. ‘죽지 않는다. 다른 선택이 있다. 하나님은 어떻게든 이끌어가신다’
다윗의 경우에도 밑바닥까지 경험하는 삶을 볼 수 있습니다. 사울의 사위가 되었으나 사울이 죽이고자 하여 도피 생활을 하였습니다. 어찌하든 하나님의 땅에 있고자 국경선 근처의 광야에서 도망을 다녔습니다. 그럼에도 사울의 추격은 계속 되었고 결국 블레셋으로 망명하게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약속의 땅에 있고자 하여 시므온 지파에게 분배된 시글락 땅에 거하고자 하였습니다. 블레셋 땅에서도 이스라엘의 대적들을 쳤습니다. 블레셋과 이스라엘이 싸우게 되었을 때 다윗은 선봉으로 서서 이스라엘과 싸워야 하는 위기를 겪게 되었습니다. 다윗이 얼마나 하나님께 매달렸을까요? ‘이것만은 제발 막아주십시요.’ 다른 블레셋 방백들의 반대로 전쟁을 하지 않고 다시 돌아왔으나 또 온 가족과 다윗의 두 아내까지 사로잡혀간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광야에서 목숨이 왔다갔다 했고 결국 쫓겨서 이방땅에 와서 고생하는데 가족까지 뺏기는 상황까지 하나님은 몰아가겼습니다. 다윗은 이 상황에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어서 결국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가장 큰 절망에서 가장 큰 체험을 하였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상황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점점 남방으로 내려가다가 애굽으로 넘어간것과 국경에서 이곳저곳 도망치다가 블레셋으로 넘어간것. 거기서 큰 어려움을 당하지만 그곳에서 하나님을 체험합니다. 자신의 한계를 보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거기까지 몰아가십니다. 광야로 몰아가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몰아갑니다. 나의 한계를 거기서 보고 그 가운데 계신 하나님을 발견하게 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우리의 믿음의 조상입니다. 그 말은 우리도 똑같은 길을 걷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한계를 보기까지 하나님은 몰아가십니다. 하나님이 안계신것처럼 상황을 몰아가십니다. 좋아서 선택한게 아니고 유일한 선택이라서 그것을 행하였으나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갑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빚어가시고 결국 하나님을 믿고 극복하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주고자 하시는 그 복이 되어가도록 하십니다.
둘째, 말씀을 듣고 예배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복을 조금씩 이해합니다.
아브람이 하란을 떠나 무사히 가나안에 도착했을때 하나님께서는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람은 그곳에서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 후 벧엘 동쪽 산에 장막을 친 후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애굽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처음 가나안에 도착했던 그자리 벧엘 동쪽 산에 도착했을 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필요할 때마다 말씀으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주시고 아브람은 어려운 순간에 감사한 순간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아브람은 예배 가운데 점점 하나님을 알아가고 인정해가고 신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애굽에서 돌아온 후 아브람과 롯은 큰 부자가 되었기 때문에 함께 거하기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영역을 나눠서 떨어져서 거해야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선택을 롯에게 양보합니다. 창세기 13장 9절을 보십시요.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광야에서 물은 생명과 직결됩니다. 물이 넉넉한가 그렇지 못한가에 따라서 가축의 품질이 달라집니다. 자라나는 풀의 영양가가 달라지고 가축의 털과 고기의 등급이 달라집니다. 안좋은 쪽을 선택한 사람이 큰 손해를 보게 됩니다. 그럼에도 아브라함은 양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애굽에서 살아나오게 하신 하나님을 체험하였기 때문에 충분히 양보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죽음에서 건져낸 하나님, 위기에서 건져낸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내가 아무리 손해를 보더라도 망하지 않는다. 언제라도 일으켜 세우시는 하나님이 있다’라는 체험을 했기 때문에 양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결국은 아브라함처럼 하나님께서 만들어 가시는 것 같습니다. ‘괜찮아. 죽지 않아. 망하지 않아. 손해봐도 괜찮아’. 모든 사람이 끝났다고 생각할 만큼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십니다. 우리에게는 주님이 있습니다.’ 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게 만드십니다. 그렇다고 상황이 바로 반전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의 삶을 이끌어가시는 하나님이 계시고 ‘너는 복이 되리라’ 말씀하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아브라함처럼 우리를 복으로 만들어가십니다.
롯이 떠나간 후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13장 14,15절을 읽겠습니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아브람은 그 말씀을 들은 후 장막을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하신 것은 아브람이 그것을 이해할만큼 성장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같은 말씀을 들어도 삶의 경험을 통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아브람을 격려하셨습니다. 아브람은 때마다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을 인정하였습니다.
아브람은 삶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것과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들을 하나씩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삶 가운데 어려움이 있었으나 그가운데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믿음의 사람으로 믿음의 조상으로 세워져 갔습니다.
내용을 종합해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한 큰 계획을 세우시고 그것을 반드시 이루고자 하십니다. 우리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위기와 절망 가운데 그것을 조금씩 알게 하시고 하나님을 믿고 붙잡을때 복된 삶이 무엇인가 깨닫게 하십니다. 아브라함이 우리의 믿음의 조상이라면 우리 또한 결국 이삭을 바치는 믿음까지 성장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의 이삭을 언제라도 기꺼이 바치게 될 것입니다. 축복하시는 하나님이 이를 이루어 가십니다.
지난 11개월의 삶을 설명하고자 합니다. 작년 이맘때 NHN의 가장 높으신 의장님께서 ‘왜 같은 게임을 여러 스튜디오에서 만들고 있느냐. 몇개씩 정리해라’라는 명을 내리고 그때부터 각 스튜디오가 난리가 나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날 몇개의 프로젝트가 그냥 엎어지고 인원이 정리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일찍 퇴직하려는 분들은 신청을 받았고 소속이 사라진 분들은 독서클럽이라고 불리는 책상만 있는 곳으로 이동한 후 몇개월동안 회사에서 내주는 과제를 진행하면서 살아남던가 다른 직장을 알아보던가 해야 했습니다. 제가 속한 starfish는 라인러쉬라는 게임이 잘 안된 후 차기 프로젝트를 선정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상황에서 이 사태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일부는 이직하고 일부는 독서클럽으로 이동해야 했습니다. 프로그래머들은 대표님과 면담하게 되었습니다. 그당시 버프스톤의 한대표가 3개월정도에 한번씩 3번정도 도와달라는 연락을 했었습니다. 대표님과 면담한 날에 우연히 한대표의 연락을 받게 되었습니다. 버티다가 명예퇴직 형식으로 쫓겨나느냐 내발로 나가서 옮기느냐의 선택 밖에 없었습니다. 월급은 첫달밖에 못주지만 3개월 정도만 도와주면 완성된다는 말에 늦어져도 6개월이면 끝날것으로 생각하고 NHN을 사직하고 회사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거기에는 라반보다 더 성깔있는 개발팀장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개발자가 3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5명이 나갔고 다른팀에서도 이분과 부딪히고 그만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며칠 지내면서 ‘야곱보다 더 한 삶을 살겠구나. 요셉의 감방살이보다 나을게 뭐냐’라고 생각했습니다. 고생하면서 적응하고나니 프로젝트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월급도 잘 안나오는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하는지 매일 고민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만두면 게임이 출시가 안될 상황입니다. 한대표와는 몇번 같이 일하면서 도움을 주고 받았기 때문에 이번에 출시를 하도록 돕기는 해야합니다. 돈,사람,시간이 총체적으로 둘러싸이게 되니 답답했습니다. 언제까지냐고 계속 기도했습니다. 누군가 한명이 뒤엎고 나가면 좋겠는데 다들 열심히 하였습니다. 게임은 성공확률이 낮았습니다. 그렇지만 출시하는것과 출시하지 않는것은 하늘과 땅 차이였기 때문에 출시는 반드시 되어야 했습니다. 계속 지쳐가고 나는 뭐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제가 모험을 좋아하거나 뭔가 성공을 쫓는 불나방처럼 행동한게 아닙니다. 그냥 상황이 이렇게 흘러왔습니다. 기나긴 노력끝에 결국 게임이 출시되었습니다. 역시 잘 되지 않았습니다. 출시한 이후 어느날 NHN에서 같이 근무하던 분이 사람을 모집하고 있다고 지원해보라고 연락을 해주셨습니다. 이번에는 또 어떻게 해야하는가? 하는 고민이 심각하게 들었습니다. 이쪽은 업데이트를 계속 진행해야 하는데 한쪽은 지원자를 받고 있습니다. 바로 적합한 사람이 나와서 뽑아버리면 모집은 끝나버립니다. 계속 피는 말라가고 빨리 교통정리를 해주시도록 기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도 계속되는 야근과 철야를 지속하다가 어느날 퇴근하는데 몸이 정상이 아니구나라고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때가 되었구나라고 느꼈습니다. 그다음날 사직 의사를 밝히고 메모리게임즈를 그만 두었습니다. 그 후 NHN에서 면접이 잡혀서 수양회 오기 전에 면접을 보았습니다. 결과는 수양회 오기전에 알게 되었는데 떨어졌습니다. 제가 면접 준비를 치밀하게 안한 까닭도 있습니다. 어쨌든 1층이 끝인줄 알았는데 지하실이 있었습니다. 저는 고통을 사랑하고 모험을 즐기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이 상황을 뚫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간구해서 뚫고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께 이번에는 좀 풀어주는 기간을 달라고 하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계획이 제 생각보다 크심을 믿습니다.
11개월을 돌아보면 제가 성장한 것을 느낍니다. 사람 막대기가 아닌 사람 몽둥이였지만 그래도 찜질을 당하면서 많이 성장하였습니다. 팀장을 안해왔던 제가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되었고 코드가 체계적이지 못했던 부분도 많이 정리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가운데 살아계시고 역사하신다는 것을 몸으로 체험하고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렇게까지 상황을 몰아가셔야 했는가 항상 원망의 마음이 들때가 있지만 내가 알지 못하는 복을 주고 만들어가신다고 믿습니다. 제가 내일도 계속해서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그 가운데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늠하지 못하는 큰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복이 되게 하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그분의 결정은 우리의 부족함이나 실수로 바뀌지 않고 결국 우리를 복의 통로로 이루어가실 것입니다. 수많은 어려움 가운데 하나님을 알아가게 하시고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의지를 확신하고 내일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한마디 : 너는 복이 될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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