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수양회-6] 다시 얻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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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수양회 소감-1] 다시 얻었노라

누가복음 15: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아브라함입니다.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아보면 그때마다 보이는게 다른것 같습니다.
예전에 소감을 썼을때는 내 자신이 아무것도 몰랐던 바보로 여겼다면 지금은 더 바보로 여겨집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예수님께서 제 인생을 이끌어가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내가 바보인가가 중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가가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이 은혜를 이시간 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파트1을 길게 쓰면 ‘탕자가 말아먹은 재산은 도대체 얼마인가?’하는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는데 그래도 제게 관심이 있으실 것 같아서 길게 썼습니다.

 

파트1. 노는 인생

저는 1975년 목포에서 태어났습니다. 위로는 누나, 아래로는 여동생이 있고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랐습니다. 부모님은 어렸을 때 불우한 삶을 사셨고 무일푼으로 가정을 시작하셨습니다. 안해본 직업이 없을만큼 열심히 사셨기에 그 고생을 잇게 하고 싶지 않아서 무한한 사랑으로 저희를 키우셨습니다. 어릴때를 생각해보면 저는 게임과 뭘 만드는 것을 매우 좋아했었습니다.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 동네 형들을 따라 오락실을 가본 이후 그곳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곳이 되었습니다. 예전에 따라서 가봤던 오락실을 다시 가본다고 동생을 데리고 목포역까지 세발자전거를 끌고 갔다가 길을 잃었던 적이 있습니다. 미아가 되서 파출소로 와서 엄마 아빠 이름을 말하고 미아 신세를 면하기도 했습니다. 하도 오락실을 가서 오락실 안가는 조건으로 게임기를 샀었고 과학상자도 샀었는데 약속을 어기고 그 후에도 다시 갔습니다. 집 앞에 홍장로님께서 운영하시는 오락실이 있었는데 학교갔다가 돌아오면 엄마에게 100원을 받아서 한판에 50원으로 두판한 후에 다른사람들 게임하는것을 구경하다가 집에오곤 했습니다. 방학하는날 성적표를 받아서 일찍 하교하였어도 오락실에 들러 게임하다가 늦게 귀가하였었습니다. 어느날은 열심히 게임하다가 밖에 나왔더니 한밤중이어서 친구네집에서 놀다 왔다고 거짓말을 한 적도 있습니다. 중학교는 추첨을 통해서 먼 곳으로 배정받았고 자전거를 타고다니기 시작하였습니다. 하교 후 오락실 앞에 자전거를 세워놓고 게임하고 밤 늦게 귀가하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자전거 잃어버린게 3번은 되었습니다. 그걸 다 받아주신 부모님도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중간고사 기간에 공부한다고 일찍나와서 오락실에서 게임하다가 일찍 등교하는 아들을 수상히여겨 미행한 어머니께 걸려서 잘못했다고 같이 펑펑 울기도 하였습니다. 학교일과 끝나고 자율학습시간이 있었는데 도망쳐나와서 오락실 들려서 게임하다가 밤 늦게 집에 가곤 했습니다. 크게 혼날만도 한데 그래도 부모님은 지켜봐주셨습니다.

고등학교는 그래도 목포에서는 가장 괜찮은 목포고등학교에 들어갔고 적당히 중위권의 내신을 쌓아갔습니다. 야자를 하기 때문에 매일 도시락을 두개 싸가지고 다녔는데 저녁식사시간 전 휴식시간에 저녁을 미리 다 먹고 저녁식사시간 종이 치면 오락실로 내리 달려가 게임을 하였습니다. 일찍 집에가는 날은 그 날대로 오락실에 들려서 게임을 하고 집에 갔습니다. 그 때 컴퓨터가 태동하는 시기였는데 XT 8086, AT 80286 이 주역인 시대에 부모님께 졸라서 하드 20M가 달려있는 AT 컴퓨터를 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무슨 돈이 있어서 이걸 사주셨는지 궁금합니다. 정말 비쌌을텐데. 아무튼 그 때 유행하던 삼국지1 게임을 밤이 맞도록 하다가 키보드에 머리를 찍고 자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로 인해 학교 시간에는 졸기 일수였습니다. 1교시부터 4교시까지 내리 졸 때도 있었습니다. 반 친구들은 다들 집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학교에서 조는것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성적 관리를 안해서 고등학교 국민윤리는 양양양가미미입니다. 윤리의식이 바닥인것입니다. 3학년동안 양과 가를 받은 회수를 세어보니 29개를 받았습니다. 3학년 마지막 학기 전교석차는 이과 395명중에 78등으로 마무리 했습니다. 목포고는 전교석차 78등까지도 서강대에 보낸 명문학교가 되었습니다.

저는 94학번으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수능을 두번 본 학번입니다. 여름에 처음 본 수능이 대박이 났습니다. 물론 그전에 모의고사에서도 잘 보기는 했는데 수능에서 적당히 찍은게 많이 맞아서 대박이 났습니다. 학교에서는 시험을 잘 본 몇몇 학생들에게 연설을 하도록 하였고 제가 선택되어서 올라가기 직전까지 뭐라고 할지 고민하다가 적당히 말하였는데 제 연설에 감명을 받았다고해서 당황스러웠습니다. 이과계열 전국석차가 0.3%로 서울대 자연계 정원수보다 적은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내신이 좋지 않았고 또, 제가 말주변이 없었기에 논술은 꿈에도 할 수 없었고 그래서 특차로 들어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특차로 뽑는 학교를 살펴보고 서강대 전자계산학과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께서 서강대 학생역사를 동역하기 위해 그린 큰그림, 빅픽쳐인것 같습니다.
서강대 합격자 발표날 지금은 대전에 계신 김웨슬리 목자님을 만나 성경공부에 초청을 받았고 매주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공부 할 때에도 졸기 일수였고 말씀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변하는 것은 없었습니다. 그 때 예배는 조에스라 목자님께서 1부예배를 전하시고 2부예배에는 1부예배 참석하지 못한 양들을 데려와 박다윗 목자님께서 말씀을 전해주셨었습니다. 저 혼자 참석한 날도 있었는데 그날 설교시간에도 졸았습니다. 저만 바라보면서 설교하셨을텐데 미안했었습니다. 저는 모태신앙이었으나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지는 못하였고 그래도 일대일과 예배만 참석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대학에 들어왔다고 갑자기 성격이 달라지는것도 아니고 공부 안하는 것은 여전하였습니다. 1학년 1학기 2.13을 시작으로 수면위를 운행하듯 총 학점은 경고의 살짝 위에서 떠다녔습니다. 대학교 근처의 오락실에서 공강시간에 열심히 게임을 하였고 집에서도 플스2로 게임을 하였습니다. 수면부족으로 수업시간에는 졸기 일수였습니다. 4학년 1학기에는 결석회수를 제대로 계산하지 못해서 전공필수를 FA를 받았고 5학년 1학기를 꼼짝없이 다녀야 했습니다. 부모님께서 그 돈을 또 추가로 지원해주셨습니다. 나중에 받을 유산을 미리 땡겨쓰는 꼴이었습니다. 제가 받을 유산으로 학비를 더 대주소서. 마지막 학기에 전공을 많이 재수강 한 결과 2.08의 성적으로 서강대학교를 다행히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는 닷컴열풍으로 IT업계의 버블이 있던 시절이었고 졸업 후 만난 동기가 병특을 알아보는 것도 좋다라고 귀띔하여서 회사를 찾다가 코스모정보통신이라는 곳에 병특으로 취업하게 되었습니다. 거기를 다니면서도 퇴근하고나면 학교근처 오락실에 가서 게임을 하였습니다. 그 당시 전국에 DDR의 열풍이 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서있을 수 없을만큼 장시간 미친듯이 발판위를 굴렀고 그 결과 엄청난 허벅지를 갖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빠른 걸음을 걷는데 자신있을 만큼 제 다리에는 DDR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아무튼 병역특례 기간에도 게임을 계속하였고 목적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게임을 많이 했다 적게 했다의 문제가 아닌 인생의 방향이 없이 살았고 그 공백을 게임으로 채워넣은 것이 문제였습니다. 게임을 해서 나쁜 것보다 게임밖에 할 수 없는 삶이 나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게임이 좋다고 할 수 는 없습니다. 돌아보면 부모님께서 이걸 어떻게 다 받아줬는가 놀라울 따름입니다. 부모님의 애간장이 다 녹으셨을 것 같습니다.
예. 삶을 허비했습니다. 나밖게 몰랐고 뭘 위해 살지도 몰랐습니다. 둘째처럼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고 가계부에 빨간줄을 계속 그었습니다. 탕자가 된 둘째아들이 받은 재산을 생각해 본다면 엄청난 금액이었을 것입니다. 아들에게 충분히 나누어 주고도 아버징의 기업이 유지되었으니 큰 금액이었을 것입니다. 그걸 다 탕진하였습니다. 열배를 받았으면 탕진하지 않았을까요? 그래도 다 탕진하였을 것입니다. 능력의 문제나 액수의 문제가 아닌 아버지를 알고 함께하는가 아닌가가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돈을 벌던지 못벌던지 아버지를 알지 못하면 인생을 소모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파트2. 아버지를 생각하는 인생

2012년 월드컵의 열풍이 불기 직전 병특이 끝난 6월의 어느날 회의를 하는데 ‘행복씨 요즘 뭐해요?’라고 하는 질문에 ‘놀아요’라고 대답하였습니다. 회의 끝나고 이 대답을 곰곰히 생각하게 되었는데 제 자신이 노는 인생, 의미없는 인생임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고민 끝에 회사를 그만두었고 여름수양회 인생소감을 쓰면서 제 자신을 돌아보고자 되었습니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고민하며 나의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였습니다. 수양회 가운데 불받았다고 할만큼 은혜를 받게 하셨고, 이제부터 어떠한 훈련이라도 달게 받겠다고 결단하고 내려왔습니다. 이때부터 하나님께서 그동안 미뤄왔던 인생수업을 한꺼번에 쏟아붓기 시작하였습니다. 괜히 이런 결단을 하였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결심 직후 SI 파견업체에 입사해서 정통부와 LGCNS가 주관하는 우편물류시스템에 참여하여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LG 과장님의 지금까지 뭘 하다 왔느냐는 꾸중까지 들으며 힘든날을 보냈습니다. 베게를 붙잡고 울기도 했지만 결단한 이상 계속 충실하게 맡겨진 일을 하고자 하였고 프로젝트가 끝날때에는 인정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후 회사를 나와 게임업계에 가고자 방향을 바꾸었고 디지쌈이라는 회사에 취업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때 하나님의 큰 계획의 정점인 아름다운 이사라 목자님과 가정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랑스러운 믿음이와 소망이를 우리 가정 가운데 보내주셨습니다. 가는 곳마다 훈련에 훈련을 더하였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어떻게든 붙잡고자 하였을 때 가는곳마다 작업한 것이 땅에 떨어지지 않고 출시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계속해서 게임을 만드는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매일 힘들게 땀을 흘리지만 하나님을 믿고 열심히 흘려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살아온 삶입니다. 제 인생을 살펴본다면 ‘놀아요’ 이전과 이후로 나뉩니다. 놀아요 이전의 삶이 어떻습니까? 재능이 있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부모님께 민폐를 끼치고 살았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모르고 재산을 받아 떠나 허비하는 탕자처럼 인생을 허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아들의 가장 큰 죄는 아버지의 마음을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하였고 하나님의 마음을 몰랐습니다. 그렇기에 그 시간을 게임으로 채웠습니다. 목적과 방향이 없이 되는대로 살았습니다. 제게 있어서 ‘놀아요’ 이후의 인생소감을 쓴것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라는 고백과 같았습니다. 내가 몰랐구나. 모르는게 죄구나. 나를 몰랐구나 를 깊이 깨닫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두신 뜻이 무엇인가를 처음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인생소감을 쓰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인내하시고 부모님께서 이렇게 참아주셨구나를 돌아보았습니다. ‘아들로 여김을 감당치 못하겠습니다. 저는 그럴 자격이 없습니다. 말아먹은게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저를 그대로 인정해주시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주셨습니다. ‘그래 그걸 이제 깨닫냐? 고생좀 해봐라’ 가 아니고 ‘이제라도 깨달으니 되었다’라는 마음으로 받아주셨습니다. 그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가끔 과거를 생각할 때마다 이불뻥 하고 싶은 경우가 있습니다. 그 때에 그렇게 살지 않았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이것은 어떻게보면 탕자가 술집에서 팁을 덜줬더라면 이라고 하는 생각과 같습니다. 하나님과 아버지를 떠올리고 자신을 보지 못하였다면 성공한 탕자가 되었더라도 실패한 인생이 되었을 것입니다. 제 자신을 볼 때 이런 나의 바보같은 행동들을 가지고도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시는구나라고 생각할 때 진정 은혜를 받은 삶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요즘도 게임을 합니다. 게임 만드는 회사를 다니기도 해서 회사 이름으로 나오는 게임은 다 하고 있습니다. 일과처럼 꾸준히 하는 것도 있고 출석만 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예전과 지금이 다른 것은 이제는 하나님을 안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상황이 와도 회피하고 게임으로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고 버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닻처럼 저를 붙잡아주시는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입학식때부터 저를 신수센터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동역자들과 함께 그릇을 이루고 서강대 양들을 위해 기도하고 고민하도록 하셨습니다. 함께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제가 더욱 알아가기를 기도합니다. 센터에서의 훈련과 역할을 감당하며 양들을 섬기는 일에 함께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제 인생에 가장 감사한 것은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목적 없이 노는 인생이 아닌 하나님을 알아가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인생으로 바뀐 것이 감사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고 함께 기뻐할 수 있게 된 것이 감사합니다. 저는 부족하지만 어떻게 여기까지 이끌어오신 것이 감사합니다.

인생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을 못한다 무엇을 한다가 아닌 하나님을 모른다 입니다. 우리 모두 수양회 가운데 나와 함께하기를 원하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내 삶의 목적이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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