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신수 선교 교회, 양평 여름 수양회
요절 :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 1:1]
1장 창조의 선언
[창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장 1절입니다.
여기엔 어떠한 설명도 없습니다. 여기엔 어떠한 설득도 없습니다. 모호하게 말하지도 않습니다. 이것은 선언입니다.
누구나 한번쯤 이런 질문을 합니다. 이 세상은 어디로부터 왔는가? 나는 누구인가? 인간은 어디로부터 왔는가?
이 질문을
부모님 / 쓸데 없는 생각하고 있네, 공부나 해, 삼촌 / 몰라 귀찮게 하지마, 먹고 살기 바뻐, 친구들 / 원래부터 있었던 아냐
그러한 대답 앞에서 많은 사람들의 생각은 답을 찾지 못한 채 거기서 멈춥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의 근원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 성경은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s and the earth.
(창조의 과정)
– 창조의 과정은 이렇습니다.
첫째날에 “빛이 있으라” 하시며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빛과 어둠을 나누시고 밤낮을 만드셨습니다.
둘째날에 궁창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물을 하늘 위의 물과 하늘 아래 물로 나누셨습니다.
셋째날에 땅과 바다, 그리고 식물을 만드셨습니다.
넷째날에 해,달,별을 만드셨습니다.
다섯째날에 하늘의 새와 바다 동물들을 만드셨습니다.
여섯째날에는 육지 동물과 마지막으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24시간으로 구성된 6일 동안, 세상 만물을 모두 창조하셨습니다.
미국 The Christian College Coalition (크리스찬 대학 연합)이라고, 106개 기독교 대학이 속한 협회가 있습니다. 이 대학들에 설문을 조사했는데,
“창세기 1장, 2장을 문자 그대로 온전히 믿는가?
106 대학 중에 5개만 “Yes” 나머지는 “No” 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중기청 장관 후보가 창조를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장관 후보에서 낙마했습니다. 점점 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설자리가 없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진리이다. 성경에는 오류가 없다. 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창세기 1장, 2장에 대해서 무슨 대답을 해야겠습니까? “네, 성경 창세기에 쓰여진 그대로 믿습니다. ” 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만약 신자들 조차도 창세기 1장, 2장을 문자적으로 안믿으면, 그들이 성경을 믿을 때 창세기 몇장부터 믿고 들어와야 할까요?
2장 진화론
창조를 믿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화를 믿습니다.
사실 다윈 이전에는 별다른 큰 혼란이 없었습니다. 창조는 신의 영역이었습니다. 그러나 1895년 다윈이 등장합니다.
그는 “On the Origin of Species”, 종의 기원이라는 책을 발표함으로 온 세상에 대고 “하나님이 세상을 만든 것이 아니야” 라고 주장했습니다. “하나님이 없다”라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굿뉴스였습니다.
그의 주장은 다들 아시다시피 이렇습니다.
세상은 창조된 것이 아니다.
우연에 의해서 진화된 것이다. 단세포 동물에서, 현재의 인류까지 우연에 의해 진화되고 발전된 것이다.
자연적으로 가장 강한 놈만 살아남아서 종족을 잇고 유전적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여 오늘날에 이르렀다.
(우리가 중고등학교 때 배웠던 natural selection, 바로 자연 선택설입니다.)
그러나, 진화론은 과학이라는 이름의 거짓입니다. 굿뉴스가 아니라 거짓뉴스입니다. 다윈은 창조를 하나님에게서 빼앗고, 그것을 인간의 영역으로 끌어 내렸습니다. 그래서 모든 만물의 주인이 사실 원래 없었다 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우연에 의한 발전 결과라고 이야기한 것입니다.
성경은 무엇이라고 이야기합니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존 맥아더는 그의 책, “Battle for the Beginning”(태초를 위한 전쟁) 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합니다.
“진화론은 창세기의 하나님을 없애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법을 주신 이를 내쫓고, 그의 도덕법의 신성함을 없애버리기 위해 고안되었다. 진화론은 타락한 인간이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그에 대한 성경적인 증거와, 우리가 그분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을 피하고, 누르기 위해 가장 최근에 발명된 수단이다.”
헨리 모리스는 그의 책, “The Long War Against God” (하나님을 향한 긴 전쟁)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진화라는 거짓말은 가히 세상 모든 것에 영향을 미쳤다. 거의 모든 인간의 영역에서 그 거짓말이 침투했다. 물리학 뿐아니라, 생물학, 천문학, 사회 과학, 심리학, 인류학, 인문학, 철학, 종교까지 스며들어 그 영역을 지배하고 있다. 자연히 사회와 학문 전 영역에 걸처 재앙적인 도덕적 붕괴와 사회적 분열을 가속화 하고 있다. 대량 학살에서부터 간음, 동성애, 낙태까지 인간의 존엄성을 땅바닥에 떨어뜨렸다.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보지 않고, 범죄, 마약, 모든 다른 것들을 단지 물질적인 결과, 신이 없는 우주의 결과로 보고 있다. 진화론은 “하나님이 없다”라고 하는 인류 태초부터 있어온 전쟁의 현대 버젼이다.
우리 또한 학교에서 근 20년 동안 진화는 과학이고 창조는 신화다 라고 배운 일종의 피해자입니다.
진화는 하나님이 없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진화는 거짓입니다. 진화는 비어있는 철학입니다. 헛된 속임수입니다.
오늘도 수많은 교실에서는 이 진화가 과학적이고 사실이라고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가르칩니다. 이것은 큰 슬픔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창조를 “창조론”으로 하나의 이론에 불과한 사상으로 취급해 버립니다.
그러나, 성경의 기록은 정확합니다. 성경은 사실입니다. 성경은 진짜입니다.
성경은 과학에 무릎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과학은 창조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성은 창조된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뛰어넘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과학을 만드신 분이시지만, 과학의 법칙 위에 계신 분이십니다. 성경은 창조주의 행한 일과 그 분을 기록한 책으로 과학 앞에 무릎꿇지 않습니다. 오히려 과학의 진정한 자리는 성경 앞에 무릎꿇는 자리입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알아가고, 그 분이 창조하신 만물들을 연구하고 증거하며 그 분의 이름을 높이는 것이 과학의 제 자리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사역을 시작하셨을 때 가장 먼저 하신 일이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기적이었습니다. 화학 법칙을 깨셨습니다. 물 위를 걸어 다니셨습니다. 부력의 물리 법칙을 깨신 것입니다.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을 먹이셨습니다. 질량 보존의 법칙을 무시하신겁니다. 이 땅 사역 마지막에는 온 인류가 절대 넘을 수 없는 죽음에서 다시 부활하셨고, 공간과 공간을 마음대로 다니셨으며, 하늘로 날아 올라가셨습니다. 죽음이라는 모든 인간이 피해갈 수 없는 우주적 과학 법칙을 깨뜨려 버리셨습니다. 이런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을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는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기 어렵게 하려고 하신 의도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분은 이 땅의 거스를 수 없는 가장 큰 법칙인 죽음까지도 이기심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의 자연 법칙들 위에 존재하는 분이심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땅의 모든 과학의 원리들을 창조하신 분이 과학적 원리들보다 위에 계시다는 것을 증명하신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이죠. 그러므로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는 성경의 이적과 기사는 하나님을 믿지 말아야 할 이유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고 그 분을 믿어야 하는 이유가 됩니다. 창조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과학을 만드신 분이시지 과학 안에 갇히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성경은 과학에 무릎꿇지 않습니다.
오히려 진화론을 과학적으로 연구해 보면 그것이 얼마나 허구인지 알 수 있습니다.
1) 과학적 증거가 말해줍니다.
진화론이 거짓말인 것을 세 가지 정도만 이유를 들어보겠습니다.
첫째, 연속적인 중간 단계의 화석들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윈의 진화론에 아메바 단세포 동물이 오늘날의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생물들까지 오기 위해서는 연속적인 수많은 진화 단계의 생물이 광범위하게 전지구적으로 존재해야 합니다. 당연히 진화의 증거로 수많은 그런 중간 단계의 화석들이 발견되어야 합니다.
다윈 조차 종의 기원에서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지구상에서 존재했던 중간 단계의 다양한 종들의 수는 반드시 엄청나게 많아야 한다. 그런데 왜 모든 지질학적 지질과 지층들에서 그런 중간 단계의 화석들로 가득 발견되지 않는가? 지질학은 분명히 그러한 점진적인 기관들의 발전된 연결 고리들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것은 아마도 내 이론을 향한 가장 명백하고 중대한 반대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이 연속적인 중간 단계의 화석들이 오늘날에도 발견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오늘날 화석들의 대부분은 지금도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들의 화석입니다. 가끔씩 과학자들이 진화의 중간 단계의 화석이라고 주장하는 것들의 전부가 멸종된 생물의 화석들일 뿐입니다. USC 의대 해부학 연구실에 진화론 학자인 주커맨 교수팀이 오스트랄로피티쿠스의 해부학적 특징을 아무리 연구해봐도 인간이라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을 실패했습니다. 고릴라와 침팬지 같은 유인원의 뼈인 것입니다. 진화론에서는 인간은 공룡이 멸종한 이후 6000만년 이후에 나타나야 합니다. 그런데, 공룡 화석에서 사람이 쓰던 돌도끼와 인간의 흔적들이 발견됩니다.
화석은 창조의 증거입니다. 동물의 시체가 화석화 되기 위해서는 미생물이 번식하고 자라지 못하게 빠르게 퇴적층으로 덮혀 높은 압력으로 굳어져야 합니다. 이는 노아 시대의 전 지구적 홍수를 증거합니다. 공룡과 인간은 같이 살았었고, 사람들은 공룡을 잡고 사냥했으며, 공룡 화석을 비롯한 대부분은 화석은 노아 시대의 전지구적 홍수로 말미암아 만들어진 것입니다. 화석은 창조의 증거입니다.
둘째, 종과 종간의 변화는 불가능합니다.
개와 개를 짝짓기하면 다양한 견종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한국 사람이 아프리카 사람과 결혼하면 아름답고 늠름한 자녀들이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개는 개고, 늑대는 늑대입니다. 개와 늑대, 사자와 호랑이등 서로 다른 종간에 짝짓기, 즉 이종 교배로 태어난 동물들은 자신과 동일한 새로운 자손을 번식하는 생식 기능이 없게 됩니다. 이것은 깰수 없는 자연 법칙입니다. 따라서 이 땅의 생물들은 원래부터 다양한 종으로 존재했다는 증거입니다. 창조의 증거입니다. 오늘 창세기 1방 말씀에서 “종류대로”라는 말이 10번씩이나 나옵니다. 하나님이 우리 지구상에 현재 존재하고 있는, 그리고 멸종되 종들까지 합하면 수많은 동식물들을 그 종류대로, 종류대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낙타, 독수리, 말, 사자, 기린, 코끼리, 나비, 원숭이, 오랑우탄, 공룡, 잠자리, 박테리아, 대장균, 단풍나무, 플라티너스, 강아지풀, 소나무, 질경이, 민들레, 제비꽃, 할미꽃… 모두다 하나님께서 그 종류대로 만들어주신 작품인 것입니다. 진화에 의한 결과가 아닙니다.
셋째, 호박이라는 보석을 아실 겁니다. 송진이 굳어져 화석화 된 것인데, 그 안에 벌레나 생물들이 들어가서 같이 굳어져 보석이 된 것을 본적이 있으실 겁니다. 진화론자들은 이 호박의 형성 연대를 보통 3000만년에서 9000만년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3000만년에서 9000만년 전의 호박속에 갇혀 죽은 벌레들이 오늘날의 벌레들과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진화론적 관점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무엇을 말해줍니까? 진화되지 않은 겁니다. 원래 그렇게 생겼다는 것입니다. 창조의 증거입니다. 하나님이 “종류대로” 만드신 겁니다.
이 외에도 진화론이 거짓말인 증거는 많이 있어서 여기 다 나열하기가 어렵습니다. 진화는 허구입니다. 진화는 거짓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진화의 언급이나 진화가 명함을 내밀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이 빛, 땅과 풀과 나무, 해와 달과 별들과 바다 동물들과 하늘의 새들, 땅의 동물들을을 만드시고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이게 4절, 10절, 12절, 18절, 21절, 25절, 31절 총 7번이나 나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마지막에 모두 창조하신 다음에는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나님께서 진화도 덜된 것들을 만드셔서, 아직 눈도 안나오고 입도 덜 발달된 이상한 괴물들을 만드신 후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라고 하시는 분이십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기준이 낮으신 분이시던가요?
그리고 그런 괴물같은 진화가 덜된 존재들이 우글우글 거리는 창조된 이 세상을 바라보시며 마지막에
“심히 좋았더라”
라고 하실 분 같으십니까?
천만에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눈은 우리의 눈과 차원이 다르게 높으신 분이십니다. 알프스의 아름다움을 보십시요. 함박눈 내리는 날 산에 올라가 나무에 핀 눈꽃들 한번 보세요. 가을 산에 아름다운 형형 색색의 단풍을 보신 적이 있나요? 잠자리의 눈, 파리의 다리까지도 일정한 규칙과 조화를 따라 아름답게 지으신 분이십니다. 새 파란 하늘에 그리시는 예쁜 구름들을 보세요. 드 넓은 바다에 아름답게 펼쳐진 모래 사장과 열대 바다 속의 형형 색색의 아름다운 물고기들을 보세요. 가끔 교외로 나가 눈을 들어 하나님 지으신 자연을 바라보면 그저 그 창조된 아름다움에 놀라고 감탄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좋았더라 하신 것은 정말 하나님의 기준에서 완벽하고, 아름답고, 좋은 것입니다.
완전한 존재로 창조하신 것입니다. 정말 좋았던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것이 사실이고, 이것이 진리입니다.
2) 진화론에는 사상적 오류가 있습니다.
진화는 자연적 선택에 의해서 목적없이 환경과 경쟁을 견딘 강자가 살아남았다고 이야기합니다. 시간 축을 무한으로 늘리면 말도 안되는 우연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진화론이 말하는 지구의 나이는 45억년으로 그조차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우연에 의해서 수십억년에 걸쳐 생물과 이 모든 세계가 발전되어 온 것입니다. 그러한 진화에 따르면 인간은 동물들과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의 존엄은 개의 존엄과 본질적으로 다를 수 없습니다. 아니 인간의 존엄은 본질적으로 개미의 존엄과 다를 수 없습니다.
파리와 개미들은 단지 아직 진화가 덜 된 종류이지 시간만 충분히 수억년 주어지면 우리와 같은 고등 동물로 진화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진화론에 따르면 진화가 저급하게 된 돼지고기를 먹는 것과 사람의 고기를 먹는 것의 본질적인 차이가 없습니다. 진화의 정도가 차이나는 고기 일 뿐입니다. 인간의 생명에 대한 고귀함도 땅에 떨어집니다. 파리를 죽이는 것과 인간을 죽이는 것의 차이는 진화가 덜된 것과 더된 것을 죽이는 차이 정도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진화론으로 말미암아 동물들의 기본 권리가 올라간 것이 아니라, 사람의 존엄이 땅에 떨어집니다. 그리고 진화론에 따라 추측하면 죽음 이후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도덕적 기준도 살아 남기라는 목적 앞에 땅에 떨어집니다.
오늘 본문 26,27절을 보십시요.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다른 모든 것들과 생물들을 창조하실 때에는 “있으라” 혹은 “창조하시니”, “만드시고”, “나뉘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인간을 지으실 때는 아주 독특한 광경이 연출됩니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 26절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께서 태초에 만물을 창조하실 때도 같이 계셨습니다. 이 삼위일체의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에는 단순히 명령하지 않으시고 그것을 지으시기 전에 하늘의 천상 회의를 여신 것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서로 하나된 마음으로 사람을 만드실 계획을 이야기하시며 나누시는 것이 바로 26절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에게 아주 특별한 존재였던 것입니다. 그 뿐입니까?
27절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했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다른 것들이나 동식물들을 창조하실때 때는 전혀 나오지 않았던 말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특성을 지닌 존재로 만드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특성이 무엇일까요? 창세기 1장, 오늘 본문에서부터 나오는 하나님의 특성은 무엇일까요?
“빛이 있으라”, 말씀하십니다. 창조는 말씀으로 되었습니다. 창조가 그냥 묵언의 능력으로 되지 않고 하나님께서 일일이 말씀하시는 것, 특이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바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커뮤니케이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철학자 막스 뮐러는 언어를 두고, “언어는 동물과 인간 사이의 루비콘 강이다” 라고 했습니다. 인간이 이런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말을 하고 커뮤니케이션 하는 언어를 가진 존재로 지어주신 것입니다.
그 뿐입니까? 인간 안에는 하나님의 특성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어진 자연을 이해하고, 만드신 하나님을 이해하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존재로 지어주셨습니다. 지성, 의지, 감정을 가진 존재요, 양심을 가진 도덕적 존재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 안에서 무한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하나님을 닮은 존재로 지어진 것입니다. 이는 동물들과 완벽히 다른 존재로 지어졌으며, 아래로는 다른 모든 동물들을 개척하고, 다스리며, 옆으로는 다른 인간들과 교제하고, 위로는 지으신 하나님을 경배하고, 영광돌리는 특별한 존재로 만드신 것입니다. 이 인간의 존엄은 다른 모든 피조물과 구별됩니다. 이것이 창조가 말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인간의 존엄입니다.
3) 창조와 진화 간에는 세상을 보는 시각에서 큰 차이가 존재합니다.
진화론의 관점에서 이 세상을 보면 고도로 발달된 상태입니다. 아주 저급한 생물이나 아주 저급한 존재들에서 고도로 발달된 존재의 상태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리고 세상을 그렇게 발달된 형태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 진화의 주장입니다.
그런데 창조는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하실 때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담의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죄가 들어왔습니다. 죄로 인해서 인간 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들 안에 죄가 스며들었고 죽음이 들어왔습니다. 즉, 창조의 관점에서 보면 이 세상은 완전하고, 좋은 상태에서 타락하여 나빠진 상태입니다. 진화와 관점이 완전히 다릅니다.
태양은 계속 불타 없어지고 있습니다. 지구는 남극과 북극이 자성이 있는 일종의 자석입니다. 이 지구 자기장이 태양으로부터 오는 사람에게 나쁜 자외선, 감마선, X선이나 태양풍을 방어합니다. 과학자들에 의하면 이 자기장이 매년 약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오는 유해한 것들을 점점 잘 못막아낸다는 말입니다.
불변하는 과학 법칙 중에서 열역학 제 2법칙이 있습니다.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인데, 모든 에너지는 규칙적인데서 불규칙적인 방향으로, 질서가 있는 것에서 무질서하게 되는 쪽으로 움직인다는 법칙입니다. 그 반대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물에 잉크를 떨어뜨리면 퍼저나가지, 그 반대 현상으로 발생하지 않는 원리입니다.
이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은 진화론을 부정합니다. 물질들과 만물들은 우연에 의해서는, 자연 상태로는 점점 더 발전된 존재가 생겨나지 않습니다. 불완전한 데서 점점 더 완벽한 존재로 발전되지 못합니다.
아담이 처음 지어졌을 때, 수천종의 동물들의 특성들을 한번에 집어내고 그들의 각각의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아담이 이름을 지을 때 헷갈려서 중복된 이름을 붙였거나, 고유한 이름을 지어 주기 위해서 메모지에 빼곡히 적어 내려가면서 이름을 붙였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아담이 이름지은 동물들을 까먹지 않고, 다시 기억하기 위해 돌판에 새겼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그저 한번 지어 부르면 끝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실 때 인간의 두뇌는 수천종의 동물들의 특징을 정확히 짚어내어 새로운 이름을 생각해 내고, 그것들을 한번 부르면 잊어버리지 않는 엄청난 두뇌와 체력을 소유한 존재로 지으신 것입니다.
현대 과학에 따르면 현재 지구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 뇌의 3~5% 밖에 못쓴다고 합니다. 이것이 진화론에서 말하는 발달된 뇌의 증거입니까? 아니면 창조에서 말하는 죄로 인해 망가지고 무너진 증거이겠습니까? 진화라면 쓰지도 못할 무거운 뇌를 왜 더 가지고 있습니까? 성경은 하나님이 완벽하게, 아름답게, 보시기에 좋게 지으신 이 세상에 죄가 들어왔다라고 말합니다. 그 죄로 말이암아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이 세상의 모든 존재들은 점점 더 하나님 주신 원래 아름다웠던 모습을 잃어 버리고 무질서와 혼돈의 상태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죄의 특성입니다. 죄의 힘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떠나 죄를 쫓아간 인간들의 결과요 모든 피조물들의 고통입니다.
우리는 진화론에서 이야기하는 고도로 발달된 동물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완벽하게 아름답게, 좋게 당신의 형상으로 지어진 존재에서 미끌어진 죄인들인 것입니다.
진화론으로 보았을 때, 고도로 발달된 동물인 인간들에게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서 보면, 우리는 창조된 존재요, 죄로 인해 타락한 존재이고 스스로 구원할 수 없기 때문에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 필요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세상과 우리를 보는 바른 시각이요, 변치않는 영원한 진리입니다.
3장 창조
하나님의 창조는 무로부터의 창조입니다. 이는 라틴어 신학 용어로 ex nihilo 입니다. Ex nihilo는 out of nothing, “무에서부터”라는 뜻입니다. 유사 이래로 수많은 신들이 나름대로 창조 설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의 대부분의 신들이 어떤 것들로부터 세상을 만들었다라고 이야기 하거나 이미 세상은 있다고 가정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신인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했는데, ex nihilo, 즉 무에서부터 유로 창조되었다 라고 선언합니다. 그래서 이 ex nihilo는 성경의 하나님을 다른 신들과 구분하는 중요한 차이를 말할 때 쓰여졌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무에서부터 창조하셨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크게 두 가지인데,
첫째로 하나님은 모든 존재들의 주인이십니다. 이 세상에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 중에 하나님이 지으시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부터 시작해서 모든 만물들을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만드신이가 주인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야 말로 모든 만물의 진짜 주인 이십니다. 하나님만이 만물에 대해서 절대적으로 주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유일하신 신이십니다.
만약, 이 세상의 구석의 어느 단 하나의 분자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지 않은 채로 존재한다면 하나님은 유일하신 신이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지으신 또 다른 신이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성경은 모든 만물이 하나님이 창조하셨다고 하셨습니다. 다른 모든 것들은 피조물들입니다. 하나님 외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 전부 피조물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만 신이신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처음과 나중이며 알파와 오메가입니다. 로마서 11장 36절 말씀처럼 만물이 그에게서 나오고, 그로 말미암고, 그에게로 돌아갑니다.
출애굽기 3장에서 보면 아주 재미있는 본문이 나옵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자기 소개가 있는 것 아십니까?
모세가 양치기 목자 일을 40년간 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떨기 나무에서 타는 불로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모세를 불러 “모세야 애굽으로 가라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명령하십니다. 그 때 모세가 하나님의 이름을 물어 봅니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출 3:13]
그 때 하나님이 자기의 이름을 모세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출 3:14]
스스로 있는자, I am Who I am. 라고 자기를 소개 하셨습니다. 여호와, 히브리어로 야훼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입니다. 그 뜻은 스스로 계셔서 만물의 근원이 라는 뜻입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창조되실 필요도 없으셨고, 누구의 존재나, 다른 무엇에 의존하는 존재도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창조되기 이전 부터 스스로 계신 유일하신 신이라는 말씀입니다.
인간은 산소 없으면 죽고, 나무는 이산화탄소와 물이 있어야 합니다. 하늘도 공기도 그 어떤 존재도 스스로 존재하지 못합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무엇을 의존합니다. 시간과 공간과 에너지들을 의존하여 존재합니다.
이세상 누가 자기를 소개할 때 스스로 있는자라 할 수 있습니까? 이 세상 어느 신이 자기를 스스로 있는 자, I am Who I am, 야훼라고 소개할 수 있습니까? 오직 하나님, 성경에서 말하는 야훼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참 신이십니다.
4장 역사를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
1) 하나님, 역사의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심으로 공간이 창조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심으로 시간이 창조되었습니다. 공간과 시간은 우리가 사는 3차원 세계에서는 분리될 수 없습니다. 공간없는 시간은 없고, 시간 없는 공간은 없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역사들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다른 모든 역사서가 곁가지라면, 성경은 인류 역사의 핵심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이 어디로 왔고, 어디로 가고 있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한 기록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만물의 시작이 모두 스스로 계신자 야훼 하나님에게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역사의 시작이 또한 하나님의 창조된 때부터입니다. 그리고 아담에서부터 인간의 존재가 나타나고 첫 인류인 아담이 하나님의 계명을 범함으로 인간과 모든 피조물에 죄와 죽음이 들어오게 됩니다. 그렇게 시작된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서 달려갑니다. 인류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여 이전의 역사는 그분을 향해서 달려오고, 이후의 역사는 그 분으로부터 출발해서 퍼져 나간 역사입니다. 구약의 모든 성경들은 오실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신약의 모든 성경들은 오신 그리스도를 증거하면서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인류의 역사는 하나님의 인간 구속의 역사입니다. 창조와 타락과 그리스도의 오심, 그리고 죽으심과 부활하심. 그리고, 그 분을 만난 증인들이 복음을 들고 온 세상에 전파하게 된 후에, 비로소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다시 오심으로 이 창조된 지구의 역사가 끝이 납니다. 세상 모든 것의 역사는 창조부터 아브라함까지 2000년, 아브라함부터 그리스도 예수가 오심까지 2000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이후에서 지금까지 2000년. 약 6000년의 동안 젊은 지구에서 벌어진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입니다.
베드로후서 3:12~13절은 그 구속 역사의 마지막에 대해서 말합니다.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마지막 날에 이 세상 모든 물질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녹습니다. 그러나 믿는 우리는 새 하늘 새 땅에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십니다.
하나님에게는 우연이 없습니다. 이 지구상에는 우연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후에 그 세상을 다스리는 주관자 이십니다.
먼저 작게 한번 생각해볼까요?
모세의 엄마가 바로의 잔인한 명령으로 인해 아기를 더이상 키울 수 없어서 나일강에 떠내려 보낸 사건을 생각해 보십시요. 아기 모세가 담긴 바구니가 떠내려 갈때, 그 물결을 인도해 주신 하나님. 혹여나 목적지에 다다르기 전에 수초에 걸리지 않도록 이리저리 바람과 물을 조정하시는 하나님. 그날에 날씨를 주관하셔서 바로 공주가 나일강에 목욕하러 나올 수 있도록 해주신 하나님. 바로의 공주가 목욕하러 내려온 나일강가 갈대 사이에 아기 모세가 담긴 상자를 걸리게 하신 하나님. 갈대 상자를 궁금해하고 바로 공주의 마음에 들게 하신 하나님, 이런 섭리가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하나라도 틀어져서 모세가 바로 공주를 만나지 못했으면, 그 이후의 역사는 종잡을 수 없을 만큼 틀어집니다. 마치, 수십 키로미터의 터널을 산 양쪽에서 큰 기계로 뚫어 올 때에 1도만 틀려도 중간에 만나지 못하는 불상사가 벌어지는 것과 비슷합니다. 오차 없이 정확히 일치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천년도 더 지난 때, 갈라디아서 4장 4절에서는 그리스도가 오심을 두고, “때가 차매” 라고 말합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갈라디아서 4장 4절]
때가 찼다는 것은 그 때, 정확한 시간과 상황이 있다는 것입니다. 적정한 기회가 왔다는 것과 다릅니다. 시간을 정해놓고 기다리셨다는 것입니다. 태초부터 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 정확한 시간과 장소를 예비하여 역사를 움직이시고, 만물을 다스리시며 전진 시키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수천년 전에 수많은 구약 성경들에서 그리스도를 예언하시고, 어디서 나실지도 어떻게 고난 받으실지, 어떤 분이신지 미리 말씀하시고, 때가 차매 자기의 그 아들을 보내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신비이고,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이고, 이것이 역사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증거입니다.
예언을 정확히 이루시는 분, 하신 말씀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시는 분. 하나님이 바로 창조주 이시고, 하나님이 유일하신 신이라는 것에 대해 이것보다 더 큰 증거가 어디있습니까? 하나님은 창조한 역사를 움직이시는 분이십니다.
결론,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1) 창조주를 경외해 합니다.
예레미아서 5장 22절 말씀에는 재미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가 나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내 앞에서 떨지 아니하겠느냐 내가 모래를 두어 바다의 한계를 삼되 그것으로 영원한 한계를 삼고 지나치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파도가 거세게 이나 그것을 이기지 못하며 뛰노나 그것을 넘지 못하느니라
이 말씀은 믿는 자들이 자연을 볼 때의 접근을 잘 이야기합니다. 어떠한 과학적 분석을 하고 이해하는 것에 길들여진 우리입니다. 모래는 풍화작용의 결과야 라고, 생각이 거기서 멈춥니다. 아닙니다. 더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을 만드신 하나님을 경외하고 인정합니다. 그리고 모래를 두셔서 거센 파도의 한계와 질서를 정하신 하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도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하나님께로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창조 신앙이 우리 안에 들어올 때에, 하늘은 그저 그런 하늘이 아닙니다. 다윗의 고백을 보십시요.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시편 19:1]
저 깊은 산 속의 이름 모를 풀과 꽃들을 보십시요. 아무도 봐주는 이 없어도 하늘의 하나님, 자신들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노래하며 오늘도 하늘을 향해 오롯이 서서 존재의 이유를 외치고 있습니다.
밖으로 나가 하나님 지으신 자연을 보십시요. 모두 자기들을 만드신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소리치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온 존재로 하나님의 그 영광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실재를 가르키고 있습니다.
하늘을 보십시요. 우주를 향해 눈을 들어 보십시요. 하늘과 우주의 끝이 없고 무한함은 하나님의 높고 끝이 없음을 웅장하게 노래합니다. 산과 바다, 땅과 하늘 모든 피조물들은 지으신 분을 향한 찬양과 영광들로 소리 높여 지금도 노래하고 있지 않습니까?
믿음으로 창조주를 향한 이 영광의 노래들을 들어 보시요. 그리고 그 노래에 동참하십시요.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히브리서 11:3절]
2) 창조라는 신앙 위에 삶을 다시 정렬해야 합니다.
우리는 거짓된 과학인 진화론적 사상을 완전히 버려야 합니다.
이 창조를 믿는 신앙 안에서 우리는 우리의 모든 생각들과 삶과 사상들을 다시 세워야 합니다.
세상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내가 누군가?
생명이란?
나는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나는 왜 살아야 하는가?
죽음 이후엔 무엇이 있는가?
이 세상은 어디로 가는가?
가족이란? 친구란? 이웃이란 무엇인가?
교회란 무엇인가?
나의 고통과 나의 문제는 어디서 기인하는가?
그리고, 그 창조 신앙 안에서 우리 삶을 해석하며, 적용하며 한걸음 한걸음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 인생들은 하나님이 지으신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그 형상이 우리 인생 가운데 가장 잘 드러날 때, 즉,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가장 잘드러날 때 하나님이 영광 받으십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를 통해 가장 빛날 때 우리가 가장 행복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심을 받은 우리 인간의 삶의 이유이자 방식이자 목적입니다.
나를 통해 하나님 영광 받으시는 것
그 분을 영원토록 기뻐하고, 그 분을 즐거워 하며, 그 분께 영광 돌리는 것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런 삶의 여정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더 큰 은혜를 주사, 이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고 믿는 신앙을 우리 마음 속에 더 깊이 뿌리 내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