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여름수양회-4] 홍해를 건너는 믿음

[2017여름수양회 말씀-4] 홍해를 건너는 믿음
말씀/출애굽기 14:1~31
요절/출애굽기 14:21,22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걸어가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니”

우리는 이번 수양회를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통해 우리는 우리를 키워가시는 하나님에 대해 배웠습니다. 모세의 믿음을 통해 고난을 선택하는 믿음에 대하여 배웠고, 오늘 본문을 통해 홍해를 건넌 모세와 이스라엘 민족의 믿음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믿음에 대해 말씀해주고 있는 히브리서 11장에서는 오늘 본문의 내용이 29절에 다음과 같이 나옵니다.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을 생각할 때, 매번 하나님께 원망만 하고, 불순종하며, 우상숭배만하다가, 결국에는 망한 민족이란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11장 29절에서는 이들이 믿음으로 홍해를 건너게 되었음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어떤 믿음을 가졌었기에 아무도 걸어보지 못했던 홍해를 육지같이 건널 수 있었으며 이 믿음장에 기록될 수 있었을까요?

1. 하나님의 계획(1~14)
하나님의 기이한 10가지 재앙을 통해 애굽의 손에서 벗어난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기억하신 하나님, 430년간 노예생활에서 벗어나게 하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감사가 충만해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들 앞 길을 인도하고 있는 구름기둥, 불기둥을 볼 때마다 자신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가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상황에서 그들을 홍해의 광야길로 인도하셨습니다.
1,2절을 보십시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돌이켜 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장막을 치게 하라”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어떠한 분이신가를 애굽사람들에게 보이기 원하셨습니다.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장막을 치게함으로 바로가 다시 그들의 뒤를 따라올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바로는 장정만 60만명에 해당하는 거대한 노동력을 잃어버린 것을 깨닫고 다시 그들을 노예 삼기 위해 선발된 병거 육백대와 애굽의 모든 병거를 동원하여 추격하게 되었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애굽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자유롭게 되었다고 생각한 이스라엘이 그들을 뒤따라오는 바로를 보았을 때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그들 앞에는 홍해요 뒤에는 추격해 오는 바로의 군대라… 이를 한자성어로 표현한다면, 진퇴양난, 사면초가, 영어로는 딜레마, 요즘 젊은이들이 하는 표현을 빌자면 “헐~” 이라 할 정도로 기막힌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최신의 무기인 병거를 육백대나 가지고 오는 바로의 모습에 그들은 모든 소망이 끊어진 것과 같아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이끌어온 모세를 향해 원망을 하고 있습니다. 11,12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그들은 모세를 원망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그들을 인도하신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예기치 않는 고난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신가를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어떤 분이셨습니까? 애굽의 우상들을 10가지 재앙으로 치시고 그들을 구원한 하나님이 되십니다. 그들을 노예로 삼던, 바로를 이기신 분이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바로의 군사력에 압도되어 이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반면, 하나님은 어떤 생각을 가지셨습니까? 4절을 보십시오.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바로가 그들의 뒤를 따르리니 내가 그와 그의 온 군대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하시매 무리가 그대로 행하니라” 이스라엘은 바로의 추격이 고통스러웠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계획하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사람들에게 그들이 대적하는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이신가를 분명하게 보이시기 위해 그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시고 뒤쫓게 하신 것입니다. 바로는 이미 10재앙을 통해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를 경험했습니다. 그가 이스라엘을 놓아주게 된 것은 이스라엘이 강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강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바로는 이 하나님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우리도 이스라엘 민족과 같이 고난앞에서 원망과 불평이 나올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 함께하셔서 평탄하고 기쁘게 신앙생활을 할 것 같고 좋은 일들만 있어야 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고 오히려 고통과 고난이 다가올 때, 왜 나에게 이러한 시련과 아픔, 고통을 주시는가 따지고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는 우리가 고통과 고난만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하나님은 고통, 고난보다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러한 것들을 허락하심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함이요 우리에게 더 좋을 것을 주시기 위함인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본문에서 모세는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할 때, 그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게 말씀합니다. 13,14절 말씀을 보십시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현재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어떤 분은 과거의 실패를 보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나를 아프게 한 사람만을 보고 있을 것입니다. 불안한 장래를 보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보는 것에 사로잡히게 되어 있습니다. 과거의 실패만 보면 자신감을 상실하여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려움으로 늘 주저앉게 됩니다. 나를 아프게 한 사람을 보는 사람은 그 사람에 대한 미움과 분노로 더욱 고통스럽고 또 다시 아프게 되면 어쩌나 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기가 힘들어지게 됩니다. 불안한 장래를 보는 사람은 늘 우울하고 걱정이 떠나지 않는 삶을 살게 됩니다. 현재 이스라엘이 보고 있는 것은 가로막혀 있는 현실이었습니다.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홍해를 보았고 뒤에서 쫓아오는 바로의 군사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이로 말미암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구원에 대한 감사를 잊어버리고 이 상황을 놓이게 한 모세와 하나님께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모세는 말씀합니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이스라엘과 우리가 바라보아야 하는 것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이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위해 싸우십니다. 홍해를 가르십니다. 막혀있는 현실에 새로운 길을 내시는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바라볼 때, 과거의 실패에서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 하나님을 바라볼 때, 과거의 아픔에서 벗어나 새로운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 하나님을 바라볼 때,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장래의 걱정, 불안에서 놓임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시간 우리의 고통의 문제에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2. 홍해를 건너는 믿음(15~31)
홍해가 가로막고 바로의 병거와 군대가 다가오는 상황에서 더이상 나아갈 길이 없자, 모세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희는 주님을 바랍니다. 이제 임하셔서 저들을 물리쳐 주옵소서” 14절을 생각해 볼 때, 모세는 하나님께서 애굽과 친히 싸우심으로 그들을 구원하실 것이란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성적으로 장정만 60만명에 해당하는 큰 무리가 바다를 건너기 위해서는 노아 때의 방주나 요즘 시대 같으면 정말로 큰 항공모함 정도가 “짠”하고 나타나야 건널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홍해를 맨몸으로 건너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 것입니다.
15, 16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 하나님은 모세의 부르짖음에 두 가지 방향을 주셨습니다. 첫 번째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말씀하신 것으로, 홍해바다를 향해 나아가라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세에게 말씀하신 것으로, 홍해를 갈라지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 말씀은 모두 따르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안 그래도 바로의 군대때문에 죽을 지경인데, 하나님께서 우리보고 바다에 빠져 죽으란 말씀이신가요! 진정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란 말입니까? 우리를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겠다 하셔놓고 여기서 우리를 버리시는 것인가요!!! 흑흑흑” 그들은 이런 불평으로 주저앉을 수도 있었습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바로의 목적은 이스라엘을 다시 노예로 삼고자 하기 위함임으로 “실망입니다. 바로앞에 무릎 꿇고 노예로 사는 것이 낫겠네요.”하며 항복하고 목숨을 보존하는 방법을 택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모세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제가 무슨 능력이 있다고 홍해를 갈라지게 할 수 있겠습니까? 이스라엘 민족이 앞으로 걸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바다를 갈라지게 하지 못한다면 어찌되겠습니까?” 그들은 충분히 이러한 불평을 할 수 있는 상황이라 할 수 있습니다.
21, 22절을 보십시오.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걸어가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니” 이 말씀 속에는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게 되었을 때 나타난 결과가 무엇이었는가를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과 모세의 순종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죽게 된 현실로 불평하던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보다 바로의 군사력을 더 크게 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 말씀에 의지하여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뭔가 상황이 좋아지거나 개선이 될 여지가 보일 때만 움직일 수 있습니다. 바다가 무릎이하 정도로 내려가거나, 쫌더 바래본다면 뻘상태로라도 되어야 한 걸음 뗄 수 있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의 모습일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상황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파도가 일렁이는 홍해는 변함이 없었고 뒤에서 추격해 오는 바로의 병거들은 여전한 상황에서, 홍해 바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죽으러 가는 것과 다를 바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앞으로 나아갑니다. 또한 모세도 그 말씀에 의지하여 바다 위로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셨습니다. 큰 동풍이 밤새도록 불어 결국에는 물이 갈라져 뻘이 아닌 마른 땅이 되게 하셨습니다. 마른 땅이 되었다는 것은 자연적인 현상이 아닌 하나님께서 하신 일임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과 같이 마른 땅을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민족이 다 건넌 후에는 모세의 손으로 다시 홍해를 덮으심으로 믿음없이 이스라엘 민족만 보고 쫓아온 애굽의 모든 군사들을 빠져 죽게 하셨고 이스라엘은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통해 애굽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으셨을 뿐 아니라 광야생활을 시작하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이 얼마나 크고 위대하신 분이신가를 깨닫게 하는 일석이조의 일을 행하셨습니다. 31절은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행하신 그 큰 능력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의 종 모세를 믿었더라”
우리는 본문을 통해 순종하기 어려운 현실속에서도 말씀에 순종한 모세와 이스라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인가 일을 할 때 순종을 하는 것은 두 가지 경우일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요구를 하는 주체를 신뢰할 때이고, 다른 하나는 요구를 하는 주체가 힘이 세어서 순종하지 않으면, 나를 힘들게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간단히 예를 들자면, 부모님이나 선생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우리에게 도움을 주시는 분이고 우리와 사랑의 관계성을 맺은 분이기 때문이며, 길에서 깡패를 만났을 때, 가진 모든 돈을 순순히 내어주는 것은 안그러면 맞기 때문입니다. 그럼 모세와 이스라엘은 어떤 경우에 해당되겠습니까? 당연히 그들은 하나님을 신뢰하였기 때문에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어떤 하나님을 믿었습니까?
첫째, 구원의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13절 말씀을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그들은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보았을 때, 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430년이란 긴 세월동안에도 그들을 향한 계획을 잊지 아니하시고 찾아오신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바로의 완고함에도 불구하고 열 가지 재앙을 통해 끝내 바로의 손에서 그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이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향한 신실하심을 그들이 기억했을 때, 이 죽음의 상황에서도 자신들을 구원하실 여호와 하나님을 믿을 수 있었습니다. 모세는 이 하나님을 이렇게 찬양합니다. 출애굽기 15장 2절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둘째, 기업의 땅으로 이끄실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이 바로의 노예 상태에 있을 때, 자신이 어떠한 분인가를 그들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출애굽기 6장 7,8절은 말합니다.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하셨다 하라” 당시 그들은 가혹한 노역으로 마음이 상하여 이 말씀을 듣지 않았지만 바로의 노예에서 벗어난 지금,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심과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 삼으셔서 기업의 땅으로 이끄실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당신의 백성삼으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죽음가운데 그대로 두실 하나님이 아니심을 그들은 믿었습니다. 어떤 상황가운데서도 부모가 자식을 지키듯, 보호하시며 그들에게 약속하신 말씀대로 이끄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었습니다.
셋째,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모세는 떨기나무에서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을 기억했습니다. 자신의 품안에 있던 평범한 지팡이를 통해 이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했습니다. 또한 그 지팡이는 애굽의 바로앞에서 열 가지 재앙을 선포한 하나님의 도구이기도 했습니다. 지금 그는 그 지팡이를 손에 들고 있습니다. 16절은 말씀합니다.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 지팡이는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그는 이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에 지팡이를 들고 바다를 향해 손을 내밀 수 있었습니다. 그리할 때 홍해가 갈라지는 불가능한 일이 일어남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고난을 허락하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큰 능력을 보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었습니다. 고난은 우리로 하나님을 알게 하는 통로가 되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만약 그들이 이 고난앞에 목숨을 구걸하기 위해, 홍해앞에서 돌이켜, 백기를 들고, 바로에게 나아갔다면, 그들은 목숨을 건졌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능력은 체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 위해서는 고난가운데 일하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실 하나님, 우리를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하나님 나라 기업을 잇게 하실 하나님, 불가능한 일도 가능하게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을 때,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 방법은 가끔 우리가 원하는 방법대로, 우리의 생각대로 해결되는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생각을 뛰어넘어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현재 다양한 환경과 고난 가운데 놓여 있습니다. 중, 고등학생들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지만 생각만큼 오르지 않는 성적으로 인해 절망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대학생들은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대학에 들어왔지만 다시 취업이라는 문을 통과하기 위해 스펙을 만들어야 하는 압박감에 눌리기도 합니다. 평신도 목자님들은 회사에 입사하기는 했지만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부담과 언제 짤릴지 모르는 상황하에서 경제적 압박감과 장래 불안으로 하루하루 버티기도 쉽지 않은 세상에 살아가고 있고, 사모님들은 아이들 육아에 대한 스트레스로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또 신수 선교 교회를 생각하면, 영적 관심이 없는 시대속에서 서강대 영혼들을 만나 제자 양성을 하고 영적 계승을 이루어야 하는 문제 속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생각하면 한숨이 나올 때가 많습니다. 과연 이러한 문제들이 해결은 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자포자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때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의 때입니다. 홍해는 우리를 죽게 하는 장소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는 놀라운 은혜의 장소입니다. 우리의 삶을 인도하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우리 앞에 놓여 있는 홍해와 같은 문제들 속에서 영광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말씀을 묵상하며 홍해와 같은 문제속에서 제 삶에 역사하신 하나님을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과거 대학원 시절 IMF로 말미암아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은퇴하시고 시골로 내려가시느라 전 재산을 쓴 상태였고 저의 대학원 학비를 지원하실 형편이 되지 않으셨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저에게 학비를 댈 여유가 없으니 이참에 군대나 다녀오는 것이 어떻겠느냐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 문제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캠퍼스에 남아 계속해서 주님의 역사를 섬길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시도록 간구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별다른 응답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학비를 댈만한 과외 아르바이트가 쏟아진 것도 아니고 장학금을 받지도 못했습니다. 결국 저는 마음을 내려놓고 교수님께 휴학을 하는 사정을 말씀 드렸습니다. 그리고 뒤돌아 나오려는 순간, 교수님께서는 저에게 공부는 계속 하고 싶은 거냐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교수님의 물음에 별 기대없이 그렇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저의 대답을 들으시고 자신이 남은 학비를 빌려주시겠다고 하시며 열심히 공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학비는 저에게 큰 홍해와 같은 문제였지만 하나님은 저의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교수님을 통해 공급받게 하셔서 저는 무사히 대학원 학업을 마칠 수 있었고, 저는 지금까지 19년 동안 전공 분야에서 공부하고 일할 수 있는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저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가운데 제 생각을 뛰어넘어 역사하시는 전능한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현재 저는 꽉 막힌 회사 생활을 생각하면 답답하고 힘든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언제 짤릴지 모르는 상황과 장래에 대한 불안으로 고통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본문을 통해 과거 홍해와 같은 문제를 건너게 하신 하나님을 다시 한번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홍해를 가르셔서 마른 땅이 되게 하신 분이십니다. 불가능이 없으시며, 우리를 당신의 자녀 삼으셔서 우리를 약속의 땅,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인도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앞에 어떤 장애물도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누가, 그 어떤 것이 막을 수 있겠습니까? 제가 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저에게 주신 홍해 바다의 길에서 믿음의 한 걸음을 떼는 삶,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을 체험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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