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여름수양회 말씀-3] 모세의 믿음
말씀 : 히 11장 24절 ~ 26절
요절 :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인생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침대에서 일어날 것인지, 회사를 갈 것인지 핑계를 대고 회사를 빠질 것인지 고민을 합니다. 그리고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선택을 합니다. 우리 인생의 하루 하루가 선택의 연속으로 이어집니다. 하루 하루의 선택 속에서 우리의 인생이 결정이 되고, 이러한 선택의 결과로 우리의 삶의 열매들을 맺게 됩니다.
오늘 모세는 믿음의 선택으로 본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하나님의 사람” (신 33:1; “하나님의 사람 모세”)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이보다 더 큰 칭찬이 있을 까요?
그는 어떻게 이런 사람이 될 수 있었을 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이 모세의 믿음의 비밀을 배우길 기도합니다.
1. 하나님의 백성을 선택한 믿음
24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보통 사람들은 선택을 할 때 유리한 쪽으로,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쪽으로 합리적으로 선택합니다.
그러나 모세는 매우 역설적인 결단을 했습니다. 공주의 아들이 되기를 거절한 것입니다.
모세는 어릴적 부모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깊이 영접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찾아오사 그들을 애굽의 압제에서 구원하시고 ,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가실 것을 믿었습니다. 요셉의 무덤을 보면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과 출애굽의 소망을 키웠습니다.
창50:24~25“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정녕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여기서 내 해골을 매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그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요셉의 하나님이 그들을 이 땅에서 들어 아버지 아브라함의 땅으로 인도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는 이러한 약속의 삶을 받아 들이므로 공주의 아들로서의 삶을 거부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는 것은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특권, 곧 권세와 영광, 부와 명성을 포기하는 것이었습니다. 대신 노예백성으로서 조롱과 멸시와 능욕과 채찍질과 헐벗음을 당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이는 고난의 가시밭길이었습니다. 그의 선택으로 지불해야 될 대가는 컸으나 믿음으로 결단했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었습니다.
사람이 장성하게 되면 누구에게든 이런 믿음의 결단이 요구됩니다. 젊은 시절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자들로 살기를 결단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때마다 새로운 선택을 해야합니다. 이제 우리는 장년의 나이에 이르고 잇습니다. 이제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적어지는 시기도 옵니다. 어떻게 살 것입니까?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서 살 것인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살 것인가? 자기 영광을 위해 살 것인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것인가? 안일한 소시민의 삶을 살 것인가? 사명인의 삶을 살 것인가? 우리는 때마다 새롭게 선택하고 결단해야 합니다.
왕자의 지위를 버리고 모세가 선택한 것은 무엇입니까? 25절을 읽겠습니다.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He chose to be mistreated along with the people of God rather than to enjoy the pleasures of sin for a short time.)
모세는 왕궁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하는 삶을 선택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란 어떤 사람들인가? 이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들, 하나님의 구원을 고대하는 이스라엘 민족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비록 연약하고 힘이 없는 피지배 민족이었고 온 땅에서 무시를 받는 노예 백성이요, 3류 민족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들 안에 있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이 백성에게 영광스런 장래의 약속과 진정한 소망을 주셨음을 모세는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시고, 목자가 되시고, 방패요 산성이 되시는 영광스러운 약속 민족임을 알았습니다. 인간적으로 그들은 압제 속에 신음하고, 자기의 아기를 죽여야만 살 수 있는 고통 가운데 사는 사람들이었으나, 오실 메시야를 기다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는 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선택하였습니다. 가난할 지라도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가난하기를 원했습니다.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를지라도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있기를 원했습니다. 채찍질을 당하고 광야를 건너고, 작열하는 태양아래서 고통을 당할지라도 피하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하기를 선택했습니다.
창 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이 약속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진행형이었고, 모세에게도 동일하게 살아 있는 약속의 말씀이었습니다.
모세는 이 백성과 함께 할 때 하나님을 깊이 체험하고 그의 음성과 인도하심과 약속의 성취되는 것을 보기 원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큰 민족이 되고, 세상에 복을 나눠주는 복된 민족이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이 이스라엘을 통해 온 땅에 전파될 것을 믿음으로 보았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세상에서 볼품있는 자가 많지 않습니다. 세상의 경쟁에서 뒤쳐져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자신의 부족한 지혜와 능력으로 인해 침체에 빠지기도합니다. 세상사람들과 같이 돈이 많아서 멋진 집에서 멋진 자동차를 타면서 사는 목자님들이 정말 별로 없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방 땅에 나가 무시와 냉대를 받으면서 살아갑니다. 불안하고 불안정한 미래로 인해 하루 하루 힘겹게 살고, 자신의 자식들이 무시를 받으며 사는 것을 생각할 때 마음이 어두운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거룩한 나라 제사장 백성입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있고, 우리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우리 안에 하나님의 약속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환란 중에도 기뻐할 수 있고, 고난 중에서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요, 동시에 나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가진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비록 고난의 삶을 택하였으나 하나님안에 있는 약속을 인해 잠시 잠깐의 세상의 낙을 잃어 버렸다고 슬퍼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모세는 애굽의 왕궁에서의 삶이 잠깐의 쾌락임을 알았습니다. 그 육신의 쾌락과 영광이 일시적이요 한계적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 대가는 혹독함을 알았습니다.
야고보서 5:1~6에 세상에 대한 경고가 나옵니다.
1.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 울고 통곡하라 , 2.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3.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5.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방종하여 살륙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찌게 하였도다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 울고 통곡하라” 이는 심판이 임할 때의 반응입니다. 여기서 운다는 것은 “Weep” 로 크게 흐느끼고 탄식한다는 것으로, 죽은 자들을 위해 애통할때 쓰는 말입니다. 이는 세상의 죄악의 쾌락을 즐기며 살던 자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때 일어나는 후회의 탄식입니다. 통곡한다는 것은 “Howl” 절망으로 인해 비명을 크게 지를 것입니다. 왜 울고 통곡합니까? 이는 하나님의 심판이 미침으로, 죄의 심판으로 인한 후회와 고통 때문입니다.
다윗은 밧세바와 간음하였을 때 육신의 쾌락을 즐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한 고통은 막대하였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가족들이 파괴되는 것을 보면서 그는 Weep and Howl, 울며 통곡하며 하나님의 심판의 고통을 맛 보아야 했습니다. 죄의 쾌락은 잠깐이요 그 열매는 울며 통곡하는 심판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날에 하나님의 백성은 약속을 따라 천국 잔치의 자리에 앉아 기쁨의 경배와 찬양을 드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온 믿음의 사람들은 그 날이 천국 입성을 알리는 축제의 날이요 영광의 날이 될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상을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는 믿음
26절을 보십시오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26.He regarded disgrace for the sake of Christ as of greater value than the treasures of Egypt, because he was looking ahead to his reward.
그러면 모세가 왕자의 자리를 박차고 나와,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한 일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과 수모를 감당하였습니다.
목자가 되어 이스라엘을 인도하는 고난을 감당했습니다. 말을 듣지 않고, 때마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백성들, 심지어 자기 형과 누이마저 배역하고, 동족에게 무시를 받는 고난을 감당했습니다. 또 일생을 섬기는 종의 수고를 감당하였습니다. 사막과 광야의 길 가운데서 40년간을 섬기며, 불신과 원망과 노예 근성을 가진 백성들을 섬겨주고 영육간에 아비와 같이 보호하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어려움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고 가르치는 직분의 고난을 감당하였습니다.
그러면 모세는 어떻게 이 고난의 삶을 일평생 감당했습니까? 26절을 다 함께 읽겠습니다.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첫째로 모세는 세상 보화보다 그리스도의 고난을 큰 가치로 믿었습니다.
모세는 애굽의 잠시 가질 수 있는 부요함과 그리스도의 고난과 수모의 가치를 재어 보고, 그 가치가 비교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 의를 위해 받는 수모가 진정한 가치요 부요함 임을 알았습니다. “ greater value than the treasures of Egypt”
모세는 보물을 보는 눈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명품도 명품을 가진 사람만이 알듯이, 명품과 가짜를 구분) 애굽은 매우 부요한 나라였습니다.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보면 이집트 파라오들의 무덤에서는 매우 희귀한 보물들이 출토가 되었습니다. 피라미드의 규모와 같이 그 보물 또한 어마 어마한 것들입니다. 모세는 이러한 파라오의 궁전에 있던 왕자였습니다. 그는 세상이 줄 수 있는 모든 금은 보화와 재물들을 보았습니다. 그는 이 모든 재물을 Reject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모세는 하나님 안에 있는 영원한 보물이 더 가치 있고 비싼 재물임을 발견하였기 때문입니다. 진짜 보물이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진정한 보물의 가치를 발견하였습니다.
둘째로 하나님 나라의 상이 있음을 믿었습니다.
우리는 세상일은 죄의 열매를 맺지만 하나님의 일은 생명의 열매를 맺는다는 영적 가치관으로 기쁨으로 사명의 십자가를 져왔습니다. 그러나 가치관만으로는 자신을 온전히 헌신하고 희생하기란 어렵습니다. 우리에게는 근본적으로 영원한 상급이 필요합니다. 모세는 영원한 상급을 바라보았습니다. 모세는 노예백성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기까지 실로 많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난을 고난으로 생각하지 아니했습니다 그는 이 고난을 장차 오실 그리스도와 연결시키고 그를 위해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는 고난 후에 올 영광을 생각했습니다. 그가 이 땅에서 주님을 위하여 고난을 받을 때 장차 주님께서 영광의 면류관을 씌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이때 고난은 더이상 고난일 수가 없었습니다. 이 고난은 장차 하나님께로부터 상급을 받을 보증수표였습니다. 모세는 현재를 넘어서 영원한 것을 보며 그의 삶을 선택하였습니다.
우리는 미래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현재만을 생각하고 현재의 삶이 지속되리라는 근거 없는 믿음으로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영원한 가치, 참된 보화보다는 현재의 반짝이고 귀하게 생각하는 것에 마음과 시간과 나아가 인생을 빼앗기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눅6:22,23)
짐 앨리엇 이라는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29살에 순교하였습니다 그는 휘튼 대햑교 시절에 지도력 있는 학생이었고 레승링부의 챔피언이자 스타였습니다. 그는 한번도 복음을 듣지 못한 에쿠아도르이 아우카 부족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동역자와 에쿠아도르에서 결혼하고, 4명의 선교사와 함께 호전적인 부족민들에게 비행기를 타고 접근하였습니다. 부족민들과 친구가 될 목적으로 비행기에서 선물을 떨어뜨렸습니다. 1956년 1월 엘리엇과 4명의 선교사들이 에쿠아도르 동쪽에 있는 강가에 착륙하였습니다. 그들은 이전에 글로벌 석유회사의 직원들을 살해한 사나운 종족에게 다가 가며 복음을 전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틀뒤에 짐 앨리엇과 4명의 선교사들은 모두 아우카족 전사들에게 창과 도끼로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당시 “LIFE” 지는 이 사건에 대해 “what an unnecessary WASTE” 쓸모없는 낭비 라고 비난 하는데 10페이지나 할애하였습니다.
그러나 짐 앨리엇의 아내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 나의 남편의 죽음은 낭비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온 생애를 이것을 위해 준비했던 사람입니다. 바로 이 시간을 위해 살아왔던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의 책임을 수행하고, 자기 목표를 달성하고 죽은 행복한 사람이니다.”
짐 앨리엇은 대학시절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 하나님, 이 쓸모없는 막대기에 불을 붙여주십시오, 그리고 주를 위해 타게 하소서, 나의 삶을 태워주소서, 나의 삶은 주의 것이니이다, 저는 오래 사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주님 예수님처럼 충만한 삶을 살기 원합니다.”
그의 죽음 뒤에 그의 아내는 남편을 죽인 아우카 족에 목숨을 걸고 들어가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는 죽었지만 그의 일기 속에서 외치고 있습니다. “영원한 것을 얻고자 영원할 수 없는 것을 버리는 자는 결코 바보가 아니다”
모세가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고자 결단했을 떄 세상에서 낙오자가 되고 그 인생이 끝장난 것 같이 보였습니다. “ 얼마나 쓸모없고 낭비하는 삶인가” 바로와 바로의 공주와 세상은 조롱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시적으로 고난과 아픔과 손해가 있었지만 후에는 모든 사람이 흠모하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이스라엘의 목자가 되었습니다.
모세는 고난 속에는 그리스도를 발견하였습니다. 그 변변찮은 백성들을 살리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그의 속에는 살아 있었습니다. 목자 없는 양 같은, 눈먼 양과 같이 고통하고 신음하는 백성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 내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그 고난 가운에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가 이 특별한 고난의 의미를 알았을 때 그는 이 고난을 벗어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묵묵히 노구를 이끌고 패역한 백성들을 위해 일생을 사막길을 걸어 약속의 땅까지 인도했습니다.
저의 대학생 때 훈련 명이 차충성이었습니다. 하도 충성을 안하고 마음대로하고 기분내키는 대로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루는 좋았다, 하루는 나빴다 너무도 감정 기복이 심한 사람었습니다.
그때 저는 이 훈련 명을 받으면서 불평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는 몰랐습니다. 그 말씀에 이어서 얼마나 큰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것인지, 저는 이로 인한 하나님의 약속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마 25:21)
어느덧 중년기에 다다른 저는 소화도 잘 안됩니다, 무릎이 아파서 쑤실 때가 있고, 가끔 드라마를 보거나 슬픈 소식을 들으면 눈물이 잘 나옵니다. 배도 불룩하게 나오고,밥만 먹으면 졸립니다. 인생을 이제 count down하여 내려가는 것을 생각해야하는 나이가 가까워 옵니다.
아 나의 인생은 이렇게 끝이 날 것인가? 애 늙은이 같은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날로 날로 후패해져 가는 정신과 육신 속에서도, 하나님은 저와 같은 비천한 자를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불러주시며, 천국 잔치에 참예하는 상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이 하나님을 생각 할 때 놀랍기만 합니다.
회사에서는 Value가 없는 노땅들을 가차없이 잘라내는데, 하나님은 자격 없는 죄인에서 시간이 갈수록 더욱 큰 은혜의 상을 주십니다.하나님을 섬기며 살기로 한 것이 얼마나 복된 선택이었는지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의 진정한 바라봐야 할 것은 하늘 나라의 소망임을 새롭게 깨닫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고난을 위해 나를 부르시고, 그 소망 가운데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나를 칭찬하실 주님이 저의 진정한 삶의 목적임을 믿습니다.
모세는 80세의 나이에 소명을 시작하였습니다. 40년을 광야에서 살았으나,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하고자 했던 믿음의 결단과,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창하고자 결단하며 하나님의 상급을 바랐을 때 하나님은 그를 쓰셨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희망이 없는 패전한 수군을 다시 맡았을 때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사옵니다.” 하며, 죽으면 살리라는 마음 자세로 최후의 결전을 준비했습니다.
아직도 저에게는 많은 것들이 남았습니다. 아직도 젊고, 힘도 있고, 부족하지만 돈도 있습니다. 모세의 80세의 나이에 비하면 많은 시간이 저에게 남아 있고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바울 목자님이나 김아브라함 선교사님 같은 분들을 보면,, 저는 아직 시작도 못한 단계처럼 보입니다. 이분들을 생각할 때 아직 인생의 12시를 갓 넘긴 청년임을 깨닫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영적인 고난에 동참할 창창한 날들이 남은 하나님의 용사입니다.
(저는 메시지를 쓰면서 말씀을 증거하는 고난, 메시지의 고난이 참으로 힘듭니다. 예전에 정말 한달을 고민만 하다 도망가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명을 감당하는 속에 그리스도를 얻고 영적인 보화를 캐는 기쁨이 있음, 두렵고도 사모가 되는 십자가가 됩니다.)
요한 계시록 21장 2~4절
2.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4.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이 길 끝에 주님이 나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분이 나를 맞아 그 품에 안아주실 것이요, 나의 눈물을 닦아 주시고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칭찬하실 것입니다. 저에게 이 길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길입니다. 어렵고 힘들고 눈물이 나고 힘들 날이 있을 지라도 그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며 축복인 것을 믿습니다.
결론적으로 세상의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선택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이 있습니다. 세상의 것들을 잃는 아픔이 있을 지라도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하는 고난 속에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자라게 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주실 상급을 들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부족하고 힘이 들어 주저 앉고 싶을 때가 있더라도 하나님의 상급이 있음을 믿고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고난의 길을 걸어가길 기도합니다. 세상과 타협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그 고난에 동참하는 종이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