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여름수양회-1]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너라

[2017여름수양회 말씀-1]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너라

본문: 누가복음 19장 1절 ~ 10절
요절 :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19장 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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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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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삭개오와 그의 인생
(여리고)
여리고는 예루살렘 동쪽, 요단강의 넓은 골짜기에 위치한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교통의 요지로써, 많은 물자와 무역으로 인해 이스라엘 지역의 3대 세관 중에 한 곳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세리…)
이 여리고에 삭개오라는 세리장이 있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었던 로마는 세금을 거두는 권리를 경매에 부쳐 가장 높은 금액을 제시하는 사람에게 팔았습니다. 문제는 정해진 세금 이외에 거둔, 남는 세금은 모두 자기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주 악랄하게 많이 거두어 자기의 주머니를 채우는 세리가 이스라엘에 넘쳐났습니다. 자연히 세리는 돈은 많았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들을 이방인의 개로 여겼죠.
때문에, 교회 즉, 회당에서 출교되었습니다. 그래서 세리는 공식적으로 예배에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세리와는 같이 밥을 먹지도 않았습니다. 세리는 악하고 거짓말을 하도 많이 한다고 해서 재판의 증인이 될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세리를 아예 창녀와 같은 급으로 공식 죄인이었습니다. 삭개오는 그러한 세리 중에서 우두머리였습니다.

(그런데 왜 이스라엘의 몇몇 사람들은 세리가 되려했을까?)
그런데, 이스라엘의 일부 사람들은 하고 많은 직업 중에 왜 이렇게 천대받고 멸시받고, 거의 사회에서 버림받다시피 하는 세리의 길을 갔던 걸가요? 왜 굳이 이런 운명적인 어둠의 길을 자의적으로 선택 했을까요? 바로, 돈 때문이었습니다. 세리들은 어쩌면 철저한 현실 주의자 였습니다. 돈이 없어서 굶어 죽고, 비참한 인생을 살아가고, 집도 없어 떠돌고, 남에게 비굴해지고, 자식들이 종으로 팔려가는 것을 봤을 것입니다. 돈이 없어서 받는 인생들의 실제적인 고통의 모습들을 보면서, 허울 뿐인 종교적인 고매함을 버리고 보이는 것을 잡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람들한테 조금은 버림 받고, 조금은 소외 당하고, 죄인 취급 당하면 어때. 돈이 있는데. 언젠가 나를 버렸던 저들은 곧 나를 부러운 눈으로 처다보게 될거야. ”
그렇게 청년들은 자기의 행복을 위해서 사람들을 떠나 외로운 세리의 길로 걸어갔습니다.

(삭개오…)
삭개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키가 작고 왜소한 사람입니다. 삭개오라는 이름의 어원은 zakay((Ζακχαῖος) 로써 “밝은, 깨끗한, 순수한”이라는 의미였습니다. 한국 이름으로 하면 “김순수” 정도였겠죠. 삭개오 부모님이 아이를 낳아 이름을 지을 때 이 아이는 밝고, 깨끗하고, 순수한 사람으로 자라도록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이름 지었을 겁니다. 그런데 아이가 자라면서 키가 작고, 왜소해요. 사람들 사이에서 부대끼고 이기질 못해요. 경쟁에서 자꾸만 낙오되고 작고 왜소해서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도 별로 없어요. 삭개오는 어느 순간 결심했을 거예요.

“이미 외롭고, 버림 받은 나야. 차라리 세리가 되어서 돈을 많이 벌어서 떵떵거리며 살거야”

부모님도 반대하셨지만, 세리가 된, 삭개오는 무섭게 일했습니다. 여리고의 세리 중에서도 가장 많은 세금을 거두기도 했을 거에요. 여리고의 많은 세금 자원으로 인해서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부자가 많이 살고 있는 여리고에서도 성경에서 “부자”라고 표현한 걸보면 그의 부는 어마어마했을 겁니다. 승승 장구하여 세리장의 자리에까지 올랐습니다. 이름이 김순수가 이름과 반대로 더러운 세리장이 된겁니다.

(외로움과 행복하지 않음)
그런데, 삭개오는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부족함이 없는 부자가 되었고, 세리 그룹의 장의 자리에까지 올랐는데, 행복하지 않았어요.

밤에 누우면, 사람들에게 버림 받은 자신이 한없이 외로왔을 거예요. 사람에게만 버림 받으면 되지만, 사람들은 그를 하나님에게도 버림 받은 사람이라며 말했고, 그 생각이 미치도록 괴로웠습니다. 일요일에 남들은 모두 삼삼오오 교회에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데, 그와 그의 가족들은 교회에서 출교 당해서 근처에 갈 수 없었어요. 길을 걸으면 사람들은 모두 더러운 자기를 피해 옆길로 가거나 돌아갔어요. 어릴적 친구들은 모두 자기를 버리고 떠났고, 자기 주변에는 돈을 좋아하고 욕심많은 세리들 밖에 없었어요. 철저한 버림 받음과 깊은 고독. 돈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마음 속에 밀려오는 공허감, 삭개오의 마음은 많아 아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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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의 절망과 외로움)

2장. 만남
(예수님의 소식 )
그런데, 삭개오는 북부 갈리리 지방에서의 한 사람에 대한 소문을 듣습니다.

“갈릴리 지방에 한 사람이 있는데, 수많은 병자를 고치고, 눈먼자를 다시 보게한다더라. 억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죽은지 삼일 되는 사람을 살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 있는 것처럼 가슴 깊이 와닿게 전해주신다고 하더라. (바디메오, 나사로)
“더 놀라운 건, 그의 별명인데 바로 ‘세리와 죄인의 친구’. 그의 가장 사랑받는 열두 제자가 있는데, 그들 중에 하나가 바로 가버나움 세리 마태야”

삭개오는 이 “예수”라는 사람의 소문을 듣고 매우 놀랐습니다. 공허한 그의 마음에 한줄기 빛이 비췄습니다.

“예수가 누굴까?, 예수가 누굴까? 누구길래, 아니 어떤 분이시길래, 우리같이 더러운 세리와 죄인의 친구인가.
어떻게 하나님께 저주받은 문둥 병자에게 손을 얹을 수 있으며 깨끗하게 고칠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날 때부터 눈먼자를 눈뜨게 하실 수 있단 말인가? 예수님은 진짜다. 주변에서 늘 보던 다른 종교인과 다르구나. 그렇다면, 나같은 죄인도 하나님께 다시 돌아가게 하실 수 있으실까? 아, 예수가 도데체 어떤 분일까?”

삭개오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싶었습니다.

(여리고로 지나가심 – 나무에 올라감)
그런데, 삭개오는 그 예수님이 유월절을 맞아 갈릴리에서부터 많은 순례객들과 함께 여리고를 지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다는 소문을 듣게 됩니다. 이윽고 그날이 되자, 삭개오는 여리고 거리로 달려 나갔습니다. 그는 자기가 더러운 죄인인 것을 알았기에 예수님 가까이 다가갈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누군지 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미 예수님 주변에 사람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또한 그는 키조차 작았어요. 그래도 그는 예수라는 사람을 정말 보고 싶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예수님이 그냥 지나쳐 갈 것만 같았습니다. 그는 서둘러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길목에 있는 돌무화과 나무로 앞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그 나무 위에 올라갔습니다.

여러분… 여러분 나무 위에 기어 올라간 나이 많은 아저씨 본적 있어요? 삭개오는 나이 많은 아저씹니다. 점잖은 아저씨, 체면이 중요한 아제들 여러분 아시잖아요.
“그냥 예수님 보면 보고, 말면 말지 뭐” 이러는 아저씨.
그러나, 삭개오는 체면과 사람들의 시선이 상관 없었어요. 왜 그랬을까요?

예수님 보고 싶어서. 예수님 못볼까봐. 예수가 누군지 알고 싶어서.
“세리와 죄인의 친구”, 나같은 더러운 자들의 친구, 하나님께 버림 받은 자들을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게 해주는 사람.
영원히 버림 받았고, 사람들에게 저주받은 죄인들을 다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게 해준다는 그 사람.
너는 하나님을 믿을 수 없어!!! 라고 사람들이 저주한 자들을 다시 하나님 품으로 가게 해준 그 사람. 예수!!!
예수, 그 분을 정말 보고 싶었던 거예요!!!

힘들게 돌 무화과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가, 나뭇가지에 엎드려 몸의 균형을 맞추고, 멀리서 가까이 걸어 오시는 예수를 보았습니다.

“아, 저 분이구나.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오시는 저 분. 저 분이 그 예수라는 분이구나.”
삭개오의 마음 속에는 이미 그 예수를 향한 경외심으로 가~득 찼습니다.

(예수님께서 다가 오심)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예수님이 그 나무 근처로 지나시다가 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삭개오에게로 다가 오시는 것이었습니다. 힘들고 외로웠고, 멸시 받았던 고통스러운 인생의 시간을 오롯이 지나온 가난한 한 영혼, 예수님이 들어갈 마음의 자리가 있는 저기 나무 위의 삭개오를, 예수님은 이미 보셨던 겁니다.

나무 아래로 오신 예수님은, 삭개오를 올려다 보셨습니다.
“Jesus came to the place, he looked up”

삭개오는 그의 생전에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눈빛을 나무 아래 서 있는 그 예수라는 사람에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일평생 멸시와 무시만 받았습니다. 일평생 버림 받았습니다. 일평생 저주의 눈빛만 받았어요. 일평생 미간을 찡그린 눈빛만 받으며 살았어요. 흘기는 눈빛, 조롱하는 눈빛만 받았어요.

그런데, 오늘, 바로 지금, 저 나무 아래 예수라는 사람은, 자신을 다른 눈빛으로 보고 계신 거예요. 미소를 머금은 눈빛으로 따뜻하게 바라보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을 내려다 보는 게 아니라, (대박) 올려다 보고 있었어요.
비로소 삭개오의 마음이 열리고, 그의 어둡고 차가운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다음이예요.
그 나무 아래 예수라는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5절 후반절]
“Zacchaeus, make haste, and come down; for to day I must abide at thy house.”

나의 이름, 삭개오의 이름을 알고 계신 겁니다. 그리고는, 속히 내려오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삭개오에게 “속히 내려오라”, 왜 속히(Immediately) 내려오라고 하셨을까요?
여러분이 “아 빨리, 빨리” 라고 말할 때에는 주로 시간이 촉박하거나, 이 일을 끝내고 빨리 다른 하고 싶은 일들이 있을 때에 사용하는 말이죠? 마찬 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삭개오의 집에 빨리 가고 싶었던 거예요. 사람들이 가기 꺼려하는 더러운 죄인의 집이예요. 거기 가면 자기도 더러워지는 집이예요. 그런데 예수님은 죄인 삭개오를 만나주신 것 뿐만 아니라, 그의 더러운 집에 유하러 빨리 가고 싶었던 거예요.
“I must abide at your house”
must는 “그래야 겠다”, “그렇게 해야한다” 라는 강한 의지예요. 그 분의 삭개오에 대한 사랑은 강하고 확신에 찬 거예요.
삭개오는 큰 기쁨으로 나무에서 주르르 미끄러져 내려와(허벅지 쓸리는 소리), 예수님을 즐겁게 자신의 집으로 안내했습니다.

(더러운 곳, 오히려 구원의 잔치)
삭개오의 집은 공식적으로 더러운 죄인의 집이였어요. 사람들이 거기엔 안가요. 그런데, 예수님은 그 더러운 집으로 들어갔어요. 그리고는, 예수님은 그 더러운 집에서 삭개오와 즐겁게 하나님 나라의 대화를 나누셨어요. 왜냐하면 삭개오의 고백과 예수님의 대답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8절]

예수님이 기쁨으로 받아 주시죠.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9~10절]

사람들에게는 삭개오는 더러운 자였고, 삭개오의 집은 더러운 돼지 우리 같은 곳이었어요. 그러나 예수님에게 삭개오의 집은 잃어 버렸던 자녀의 집이었어요.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은 사랑하는 자녀의 집이었어요. 그 자녀의 집이 어떻게 더러운 집으로 보일 수 있을까요? 그 잃어버렸던 자녀의 집이 어떻게 냄새나는 돼지 우리 처럼 보일 수 있나요? 그저 예수님에게는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아들 삭개오가 사는 집이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더럽다는 곳에서 오히려 아름다운 천국 구원의 잔치가 벌어진 것입니다.

3장. 잃어 버린 자를 찾아 오신 예수님
(잃어버린 자를 찾는 분)
창세기 3장에 보면, 아담과 하와가 인간이 저지른 가장 처음이자 뿌리가 된 죄를 저지르게 되요. 바로 선악과를 따먹게 되는 건데요, 그날 저녁에 서늘 할 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거니시는 소리를 듣게 되요. 그런데, 죄를 범한 그들은 어떻게 했어요?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창세기 3장 8절]

그 때 동산을 거니시던 하나님이 뭐라고 하셨나요?

“아담아, 네가 어딨있느냐?”, “아담아, 네가 어딨있느냐?”, “아담아, 네가 어딨있느냐?”

하나님이 아담이 어디있는지 몰라서 아담아 네가 어딨느냐? 라고 그러셨나요?
천지를 지으시고 인간을 지으시고,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창조주 그 분이 아담과 하와가 어디 있는지 몰라서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라고 이야기했냐는 거예요. 아니예요.

하나님 아담과 하와 그 나무 사이에 숨은 거 이미 알고 계셨어요.
그런데 친히 찾아 오신 거예요. 죄 범하여 두렵고 수치 가운데 하나님의 낯을 피한 더러운 그들을 하나님이 친히 찾아 오신 거예요.

바로 이거예요. 하나님은 죄 범한 자, 자기 아들, 딸들. 잃어 버린 자들을 찾아 오시는 분이세요.

하나님은 오늘도, 그리고 지금도 잃어 버린 자들을 찾아 오세요. 어떻게? 말씀을 듣는 여러분의 마음에 찾아 오세요.

(누가 잃어버린 자인가?)
누가 잃어버린 자일까요?

그 때 여리고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러 나갔고, 거기엔 수많은 구경꾼들이 있었어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삭개오를 찾아 가셨어요. 그 구경꾼들은 잃어버린 자가 아니었어요.
그 구경꾼들은 구원의 축제가 열리게 될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시는 예수님보고 “저가 죄인의 집에 들어간다” 라고 오히려 팔짱끼고 욕했어요. 이 사람들은 잃어버린 자가 아니였어요. 여러분 이 구경꾼들이 되고 싶나요? 평생 교회에 다니는데, 예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구경꾼이 되고 싶냐고 묻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누구도 예수님의 구경꾼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잃어버린 자는 삭개오였습니다. 예수님을 보러 뛰어나가 나무에 올라간 사람, 세리이자 죄인으로, 예수님을 보러 사람. 그것이 잃어버린 자의 모습이예요. 예수님은 이 잃어버린 자를 찾으세요.

여러분은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니며 교회와 익숙해져 있을 거예요. 그러나, 여러분 스스로가 잃어버린 자라고 느껴 보신 적 있나요? 내 영혼의 영원한 아버지, 하나님께로부터 내가 멀어져 있다 라고 느껴 보신 적이 없으신가요?

오늘 성경은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을 아버지로 만나지 못한 영혼들을 잃어 버린 자라고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고아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용 당하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어요. 하나님 품에서 떠나와 있다면 육체의 부모님은 계실지 모르나, 영혼은 고아 상태입니다. 혹시, 세상의 헛된 다른 것들을 영혼의 아버지로 삼고 있진 않나요? 돈, 명예, 학벌, 외모, 성공, 공부.

예수님께서 잃은 자를 찾아 오셨어요. 여러분 예수님 뵈러 나무에 올라 가세요. 사람들 많아도 볼 수 있어요. 예수님이 찾아 오시잖아요. 마음으로 이 예수님께 나아오세요.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의 생애가 기록되어 있어요. 예수님의 생애 후반부는 참 고통스러우셨어요. 따귀와 주먹질, 날카로운 채찍질도 모질게 당하셨고, 피투성이의 몸으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길에 오르셨죠. 그리고, 손과 발에 못이 박혀 십자 모양 나무에 달려 그렇게 골고다 언덕에 세워졌죠. 그리고 거기서 장장 6시간 동안 숨도 쉴수 없는 고통 속에서 돌아가셨어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마태복음 27:46]

그리고 죽기 직전에는 하나님마져 그를 버리셨어요. 왜 그렇게 잔인하게 죽어야만 했을까요?

우리 죄 때문이예요. 우리의 죄, 우리의 연약함과 허물 때문이예요.
죄를 하나님이 그렇게 싫어 하세요. 혐오 하세요. 진노 하세요. 그런데 그거 예수님이 다 받아 내신거예요. 혼자 죄없으신데도, 고스란히 하나님의 진노를 다 받아내신거예요. 우리 대신. 우리가 받아야할 하나님의 저주와 진노와 죽음을 그가 대신 받아 내신거예요.

우리의 죄.
하나님이 계신 것을 보이는데도 하나님이 없다고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는 죄.
자기의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찾지 않고, 삶을 자기의 것으로만 여기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죄.
자신을 사랑하며 찾고 계시는 하나님을 떠나, 세상을 사랑하며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죄를 범하는 삶.

이 모든 우리의 죄에 대한 진노를 예수님께서 지고 가신 겁니다.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그 피는 모든 믿는자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를 깨끗케 하세요. 이 그리스도 예수님의 피를 믿는 모든 곳에서 창조의 깨끗함이 생겨나는 것니다. 삭개오와 삭개오의 집도 깨끗해졌습니다.

이 예수님을 진심으로 찾고, 예수님께 마음 문을 열어 드리세요. (Hymm) (“예수님의 사랑, 너무나 아름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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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리 방에 찾아 오신 목자님)

(결론)
지금 여기, 잃어 버린 우리를 찾아 우리의 마음에 찾아 오시는 분이 계십니다.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그 예수님께 같이 나아갑시다. 삭개오 처럼, 그냥 죄인의 모습, 많이 더러워도 상관 없어요.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잃어버린 아빠 하나님을 찾을 때에, 예수님께서 조용히 찾아오셔서 말씀하십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 오너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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