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 강아지 레미가 들어온 것은 7년여전이었다. 외동딸인 에스더가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조르고 졸랐지만, 강아지와 함께 집에서 산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 너무도 큰 문화충격이었기에 결사 반대하고 말도 못 꺼내게 하고 있었던 참이었다. 그러나 장민과 에스더는 레미의 불쌍한 처지를 말해주었다. 유기견이었던 레미는 입양되었다가 2번 파양되었고, 현재 임시보호하고 있던 분이 결혼을 하게 되어 다른 곳으로 보내야 하는데, 상처많은 이 강아지를 가족으로 받아줄 사람을 간절히 찾고 있던 중이었다. 고심 끝에 아이를 하나밖에 낳지 않은 죄?로 강아지를 입양하기로 결심을 하게 되었고 잠은 울타리안에서 재우는 조건으로 레미를 데려오게 되었다.
처음 레미를 보았던 날 나는 너무 귀여운 말티즈 레미의 모습에 “너무 귀여워”를 연발하며 그동안의 거부감이 모두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우리안에서 자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 밤새도록 칭얼거리는 레미를 보며 예전에 레미를 기르던 분에게 조언을 구하다가 그분이 했던 것처럼 우리도 울타리를 치우고 레미가 원하는 곳에서 함께 자게 되었다. 그러다가 어느순간 한가족처럼 어울려 지내는 것이 자연스럽게 되었고 레미로 인해 토니와 마루와도 인연을 맺게 되었다. 까칠하지만 자기 할 일은 똑바로 하는 레미, 못생기고 성질은 더럽지만 사람을 너무 열렬히 환영해주어 기쁨을 주는 토니, 멍청하지만 착하고 순한 마루, 각각의 강아지들의 특성이 있고 그 모습 그대로의 강아지를 사랑하게 되었다.
강아지를 키우게 되면서 나는 주인이 없이 돌아다니는 강아지를 보면 나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강아지는 주인이 없으면 혼자 자생할 수 있는 생활력이 약하고 길을 헤매다가 차에 치이는 경우도 있기에 걱정이 되었다. 주인에게 먹을것, 입을 것, 모든 것을 전적으로 공급받아야 하는 강아지이기에 주인이 없다는 것은 그 강아지의 생명과 안전이 보장받기 힘들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강아지를 보면서 나는 성경말씀을 떠올리곤 한다.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를 목자와 양으로 비유해주신 말씀말이다. 양은 목자가 없으면 좋은 풀이나 물도 제대로 찾지 못하고 방어무기도 없어 그 생명이 참으로 위험하고 불쌍한 처지가 된다. 예수님은 우리를 볼때 목자없는 양같이 유리방황하는 것을 보며 마음아파하셨다. 그러나 목자되신 예수님을 만난 이들은 이제 목자의 인도함을 받아 풍성한 생명을 얻게 된다.
나의 영혼의 목자되신 예수님을 알지 못했을때 나름대로 열심히 산다고 했지만 어디로 가야할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참 막막하고 불안한 삶을 살았었다. 예수님을 나의 주요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난 뒤의 나의 삶은 인생의 목표와 의미를 찾았고, 목자되신 예수님의 인도를 받아 때론 푸른 초장, 맑은물가로, 때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지나기도 하지만 나의 영혼의 주인이요 목자되신 주님으로 인해 평안을 누리고 있다.
그리고 예수님은 내 존재 자체로 인해 기뻐하시고 나와 함께 하는 것을 좋아하시며 내가 평안히 지내는 것을 원하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많은 일을 하지 않아도, 내가 부족해도 그런 나를 이미 알고 계시고 사랑하심을 깨닫게 된다. 나의 목자되신 예수님안에 거하며 그 사랑과 인도하심을 받는 나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이 목자되신 예수님께 방황하는 영혼들이 돌아오도록 하는데 나의 삶이 쓰임받기를 기도한다.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벧전2:25)
[잘생기고 똘똘한 레미 : 갓데려온 3~4살때 모습]
[멍청하지만 사랑스러운 마루]
[레미와 토니]
One thought on “강아지와 나 – 1”
멍멍이 얘기만 해도 감동적인 울 목자님~ 쿨럭~ @_@;;